[뉴스토마토 김하늬·김민성기자]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할 뿐이지만 금융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맹보다 더 무섭다"(앨런 그린스펀 前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금융이해력은 이제 더는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이해력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필수상식'이 됐다.
소비자의 금융역량이 금융발전의 토대가 되고, 소비자보호의 뿌리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데 금융당국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공감했기 때문이다.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면 금융소비자가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고 책임도 질 수 있는 금융이해력을 갖춘 소비자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금융교육에 대한 거버넌스와 컨트롤타워가 불명확하고, 체계적이지도 못해 걸음마 수준이다.
◇국내 소비자금융 '까막눈'..금융교육 첫 단추 잘 꿰야
이제 금융도 일반상품처럼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게 된 만큼 소비자들의 일상이 '금융'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변화된 금융시장에 적응할 수 있는 '금융이해력'은 현대인의 필수조건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금융 이해력 수준은 어느정도일까? 한국은행이 지난해 조사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5개국 가운데 한국은 7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중위권 수준이지만 금융선진국이 모두 포함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실제 순위는 이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우리나라 금융이해력 점수 (자료=한국은행)
이번 조사는 금융지식, 금융행위, 금융태도 등 행동양식과 의식수준을 파악해 금융교육과 정책수립에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실시됐다. 한은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금융생활에 필요한 기초지식이 취약해 과장광고, 불완전 판매 등에 노출될 경우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 금융에 대한 기본교육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금융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금융교육은 어릴때부터 시작해야 올바른 금융습관과 책임의식이 강화된다는 것.
미국의 경우 지난 2002년 금융 교육 활성화 정책에 따라 재무부에 '금융교육국'을 신설했다. 또 각계 전문가들이 만 든 소비자 금융 교육 표준안을 이용해 금융 교육의 체계를 잡고, 매년 4 월을 금융교육의 달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캐나다는 매년 11월을 금융교육의 달로 정하고, 금융교육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도 금융감독청을 중심으로 금융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해외 선진국은 일회성 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어린 시절부터 학교 정규과목으로 정했다는 점이 눈여겨 볼 부분이다. 미국, 일본, 캐나다 등에선 8세부터 학교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미국의 많은 주와 영국, 캐나다 등에서 고등학교 금융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금융교육의 필요성을 공감해 다수의 금융유관기관에서 교육을 실시하고 금융교과서를 집필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활성화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또 금융교육을 금융당국의 임무로 규정하고 있는 명확한 법 규정이 없고 금융교육에 대한 거버넌스 및 컨트롤타워도 불명확하다.
윤영은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과장은 "금융교육 관련 사항을 법령에 규정 해 금융교육 추진주체와 의무 등의 법적근거 마련이 필요하다"며 "장기적 으로는 금융교과서를 통한 의무교육도 진행되는 방향이 맞다"고 설명했다 .
김용우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총괄국장도 "우리나라 교육과정에 금융교육 이 포함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며 "경제 과목에 한두 챕터라도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중"이라고 밝혔다.
이뿐 아니라 모든 세대가 국내 현실에 적합한 한국맞춤형 교육을 통해 전 세대가 금융교육에서 소외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크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융지식의 습득과 올바른 습관 형성을 위해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기본적인 금융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중장기 적인 방향으로 금융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해 국민 모두 공교육을 통해 배우는 생애주기별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호만 받는 소비자, '금융체력' 저하.."선택권 보장해야"
투자 피해사례에 대한 보상이나 소비자 보호에만 관심을 두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소비자를 보호대상만으로 보지 않고 교육을 통해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고 책임을 질 수 있게 유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소비자에게 자율권을 주고 '자기 책임의 원칙'을 강조하자는 얘기다.
저축은행·동양 사태를 비춰봤을 때 금융사의 불완전 판매의 유무와 피해자 보상범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만 문제의식이 있어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피해보상에 급급한 나머지 보상방안에 대한 논의만 있어 자연스레 소비자는 늘 보호받는 존재라는 인식만 심어줬다"며 정부의 대응을 에둘러 비판했다.
이어 금융교육도 예·적금 금리나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에 그치고 투자의 기본원칙인 '자기책임의 원칙'은 실제로 강조되지 않는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수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교수도 "정부가 소비자를 지나치게 나약하다고 판단해 오히려 의타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융권이 지속적으로 지적받아온 불완전 판매 관행이 먼저 없어져야 한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 사례가 엄연히 존재하는한 마냥 소비자에게 책임을 강요할 순 없다"며 "불완전 구매를 없애기 위한 금융교육과 불완전 판매를 없애는 금융인의 윤리의식이 동일선상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