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용식기자] 일본에서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인기는 놀랍습니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조차 “꿈만 같고, 진짜 꿈이라서 자면 깰까 걱정이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인기요인이 무엇일까 궁금증을 나타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분석은 고도화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선보였다는 것입니다. 기존 문자서비스에서 벗어나 이용자들이 인터넷망을 기반으로 메시지를 무제한,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한국과 달리 수준 높은 모바일 인프라가 이미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십년 전부터 휴대폰으로 이메일 송수신이 가능했을 정도로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발달했습니다.
스마트폰 도입 또한 빨랐습니다. 아이폰만 하더라도 2008년에 상용화됐으니까요. 이는 와츠앱이나 아이메시지 등 라인의 대체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일본은 공짜로 문자메시지를 지원한다고 해서 움직이는 시장이 아니었습니다.
라인이 일본 열도를 흔들 수 있던 것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아닌 ‘문화’를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스티커가 있었습니다.
NAVER(035420)는 ‘라인 프렌즈’라는 이름으로 여러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만들었고 이들을 이모티콘으로 표현, 좀 더 고차원적인 의사소통을 지원했습니다.
◇ 라인 스티커 (사진제공=네이버)
예를 들면 “사랑해”라는 말은 꼭 필요하면서도 막상 하기에는 낯간지러운 말입니다. 부모님이나 배우자, 애인 등 주변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만 쉽지 않죠. 하지만 귀여운 곰이 하트 이미지와 함께 수줍은 얼굴을 한다면 어떨까요? 훨씬 부드럽고 세련되지 않나요?
실제로 스티커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인터넷 비즈니스 주 수요층이자 트렌드 주도층인 ‘1020세대’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라인 캐릭터들의 인기는 도라에몽, 원피스 같은 만화 주인공 못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제 많은 이들이 문자를 전혀 쓰지 않고 순수 스티커만으로 의사소통을 이어나가곤 합니다.
이밖에도 라인 스티커는 여러 부수적 효과를 창출했습니다. 유료화에 성공함으로써 탄탄한 수익원으로 자리를 잡았고, 향후 전개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용자 거부감을 크게 줄였습니다.
또 글로벌 진출의 첨병으로 맹활약을 했습니다. 라인은 자사 캐릭터만을 고집하지 않고 제휴를 통해 현지 인기가 많은 캐릭터를 스티커 상품으로 소화했습니다. 스페인에서 프로축구단 FC바르셀로나와 계약을 맺고 리오넬 메시와 같은 축구선수를 모델로 기용한 게 대표적 예입니다.
◇ 라인 스티커 디자이너 강병목씨가 직접 그린 프로필 (사진제공=네이버)
시장에서는 고스펙으로 무장한 제품들이 참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이미 비슷한 상품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며 크게 돌풍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아무리 IT기업이라 하더라도 소비자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높은 기술력보다 감성적인 접근이, 공급자 관점보다는 수요자 관점이 요구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네이버가 감성적 접근에 성공했던 것은 시장 수요자를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가 전화보다 문자를 훨씬 편하게 느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들만의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준 것이죠.
만약 화상채팅, 인터넷전화, 파일전송 등 기능적인 측면에 몰두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지금의 성공을 보장받기 어렵지 않을까요?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