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희주기자] 세계 곳곳에서 유리천장 깨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연임에 성공하고,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의장이 탄생한 데 이어 이제는 브라질, 칠레, 인도 등 신흥국에서도 여성 지도자들이 배출되고 있다.
일부 국가의 여성들이 점차 정치적·경제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되면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연 세계의 일반 여성들은 어떤 위치에 놓여있을까. 그리고 세계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애 키우며 일하는 게 글로벌 트렌드..신흥국은 갈 길 멀어
한 국가의 총수가 여자라 해서 그 나라 일반 여성들의 고용률이 높은 것은 아니다.
미첼 바첼레트는 칠레의 제3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지난 2012년 기준 칠레의 여성 고용률은 50.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CED)의 평균인 57.2%에도 못 미친다.
OECD에 가입된 34개국 중 가장 높은 여성 고용률을 자랑하는 나라는 아이슬란드다. 지난 2012년 기준 아이슬란드의 여성 고용률은 무려 78.5%에 달한다.
그 뒤를 이어 노르웨이가 73.8%, 스위스 73.6%, 스웨덴 71.8%, 덴마크 70% 등도 전부 70% 대의 여성 고용률을 보여준다.
북유럽 국가들은 흔히 부유한 복지국가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실제로도 그렇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밖의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미국(62.2%)과 영국(65.7%), 독일(68.0%) 역시 OECD 평균 이상의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한국(53.5%)을 비롯 스페인(51.3%)과 그리스(41.9%) 등 유로존의 위험국과 칠레(50.2%), 터키(28.7%) 등 신흥국의 여성 고용률은 저조한 편이다.
터키 가정노동통계에 따르면 경제활동이 가능한 15세 이상의 여성은 터키 인구의 절반을 넘는다. 하지만 실제로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은 3분의1도 안 되는 꼴이다.
다만 여성들의 고용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2005년 당시 고용된 여성의 수는 530만명이었고, 2013년 들어서는 8년새 45%나 늘어 770만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주로 높은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노동집약적 일자리 또는 사회보장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일자리가 대부분이라 노동의 질은 높아지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터키 사반치 대학교의 기업관리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남성 주도형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고용이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며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더욱 공평하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싸워야 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2012년 OECD 가입국 여성 고용률 현황(자료=OECD, 뉴스토마토)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여성 고용률과 출산율의 관계다.
과거의 추세를 보거나 OECD에 가입되지 않은 일부 신흥국들을 보면 여전히 여성의 고용률과 출산율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출산·양육과 경제활동이 양립할 수 없는 구조에서 여성들은 일과 가정 중 어느 한 쪽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OECD 가입국과 유럽 국가들에서는 여성 고용률과 출산율이 동반 상승하는 추세다.
양성평등 의식이 높아지고 국가가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도 일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호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서 일과 가정이 상호양립할 수 있는 관계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택면 여성정책연구원 여성일자리 인재센터 연구위원은 "여성이 노동시장 진출과 출산을 양립할 수 있도록 사회제도적 여건이 갖춰지는 것이 선진국의 글로벌 트렌드"라고 말했다.
◇선진국 여성경제활동참가율과 출산률 관계(자료=OECD, 뉴스토마토)
◇시간제 일자리부터 휴직제도까지..여성 고용률 높이는 선진제도
기본적으로 북유럽 국가들처럼 자본주의에 사회적경제의 개념이 더해진 나라들에는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가 존재한다. 상당 부분은 국가가 직접 제공하는 일자리라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유럽 국가들은 일자리 쪼개기라는 개념의 '시간제 근로' 제도를 활용해 풀타임으로 근무하기 어려운 여건에 있는 여성들을 사회로 끌어내는 데 효과를 보고 있다.
네덜란드나 영국, 독일 등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선진국에서는 고학력 여성 근로자 3명 중 1명이 시간제 근로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경우 근로자의 64.9%가 근로시간을 결정하는 데 어느 정도 재량권을 갖으며, 20% 정도는 전적으로 자신의 결정에 의해 근로조건이 정해지고 있다.
독일과 영국도 근로자의 절반가량이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 여성 근로자의 10%는 재택근무를 이용하고 있으며, 독일과 영국도 각각 7.6%, 5.5%의 여성 근로자가 재택근무를 선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체 기업의 7.2%가 재택근무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나, 도입한 기업의 60% 이상이 이용자가 0%인 상황이다.
그 밖에도 주요 선진국에서 마련해 놓은 제도는 출산 및 육아와 관련된 휴가제도다.
'임산과 출산휴가'는 출산 전 6주부터 추산 이후 10주까지 여성에게 주어지는 휴가로 100% 임금을 보장한다.
또 어린 자녀를 가진 부모에게 최장 6개월까지 사용 가능한 '육아 휴가', 매년 최고 10일까지 가족을 돌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보살핌 휴가', 아동을 입양할 경우 주는 유급 '입양 휴가' 등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휴가제도가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을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줘도 못쓰는 육아휴직
하지만 여성 고용의 문제는 국가의 제도 시행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 고용률이 낮은 국가들도 여성들의 휴직제도는 완벽하게 마련해 놓은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진정한 여성 고용의 문제는 기업문화와 국민들의 의식 수준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OECD 대부분의 국가가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를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분위기가 모든 국가에 조성돼 있는 것은 아니다.
제도가 없어서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기업문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전문가들은 주로 한국이나 일본, 중국 등 동양권의 기업에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 국가들에서는 육아휴직시 임금대체율이 낮고, 휴직 이후 인사상의 불이익이 발생하는 일이 빈번해 제도 이용률이 낮게 나타난다.
또 지역적 문화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이나 일본 등 동양권에서는 자녀의 교육문제를 여성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어 여성들이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로레타 밍겔라 크리스티안 에이드 대표는 "남성들과 동등한 기회를 갖고 싶다면 사회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선진사례인 '시간제 일자리'를 신흥국들이 도입하려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 역시 쉽게 정착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란 결국 '양'과 '질'을 따지는 문제다. 임금 수준이 높은 질 좋은 일자리에 여성들을 고용하겠다고 한다면, 근로의 질은 높일 수 있지만 일자리 수 자체는 늘리기 어렵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가 주로 노동집약적 산업 부문에서 창출되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들은 결국 임금 수준이 낮은 일자리로 모이게 되고, 이는 고용률 자체를 늘리는 데는 효과가 있을 지 몰라도 여성들의 근로 수준이 향상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왼쪽),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운데), 자넷 옐런 차기 Fed 의장(사진=로이터통신)
◇잠재된 여성 인력 활용..파이 키우는데 효율적
여성들이 세계 지도자급 자리에 오르고, 기업들의 최고경영직을 맡게 된다고 해서 여성의 고용률이 눈에 띄게 오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전반적으로 사회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준다.
무엇보다도 잠재돼 있는 인력을 활용한다는 것은 여성이건 남성이건 상관없이 국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여성 고용률이 높다고 자부하는 국가라도 어디나 남성 고용률이 더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세계는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더 잠재돼 있는 여성 인재를 발굴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오은진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을 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돈을 쓰는 선순환 구조가 내수와 외수를 모두 높이는 일이기 때문에 여성 인력을 끌어내는 것은 전반적인 경제의 볼륨을 키우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다"고 설명했다.
세계 평균적으로 볼 때 남성 고용률이 여성 고용률보다 20~30% 높으며, 여성들이 남성과 동일한 수준으로 일을 하게 된다면 한 국가의 파이 크기는 극대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여성의 고용률과 국가발전의 상관관계에 대한 계량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르면 여성의 권한이나 지위가 높을수록 국민총생산(GNP)가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택면 연구위원은 "기업의 경우 여성 관리자의 비중이 높으면 기업의 실적이 좋아진다는 연구도 있다"며 "인과관계는 불분명하지만 여성의 지위와 국부의 상관관계에 대한 보고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들의 최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책임을 지고 오르는 것도 좋지만, 중간 단계에서 브릿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에 더 많이 오르는 것이 여성의 경제활동 진출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