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성기자] "1월 한달이 어찌 지나간지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하루에 수백번은 족히 하는것 같아요" (카드사 콜센터 직원)
"직업 중 여성 흡연자가 가장 많은 분야가 어딘지 아세요? 바로 콜센터 직원입니다"(금융권 관계자)
28일 저녁 기자와 만난 A카드사 콜센터 직원 최영아(가명·여·24세)씨는 상당히 지친 모습이었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 대답을 드리지 못하면 바로 욕설과 인격모독으로 이어지며 오늘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얼마나 내뱉었는지 셀수도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수백건에 달하는 상담전화를 받으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이라고 했다.
콜센터 직원들은 '감정노동자'의 최일선에 있으면서 다양한 진상(?)고객을 만나지만 이번 사태이후 부쩍 늘어난 '험한' 고객들 때문에 더욱 곤욕을 치르고 있다.
"목소리만 들어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대학생인데 다짜고짜 카드에 있는 돈 물어내라, 니가 전화 받았으니 피해입으면 책임져라 등 폭언이 난무한다"며 울컥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합니다. 고객님' 뿐이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수 없이 반복하다 보니 가끔은 기계적으로 말하는 경우 고객들에게 "지금 죄송하다는 말에 영혼(진심)이 없다"며 핀잔을 듣기 일쑤다.
기자가 방문한 한 카드사의 콜센터는 개방된 전화부스에서 관리자의 감시 아래 하루종일 업무를 해야하기 때문에 잠시도 여유를 부릴 틈도 없었다.
요즘 카드사 콜센터 직원들 사이의 업무 성토대회 장소는 '화장실'이다.
다른 콜센터 직원은 짧은 휴식시간을 이용해 화장실에 모여 수다로 서로 힘든 점을 털어놓는 게 유일한 낙(樂)이자 '스트레스 풀이법'라고 넋두리를 늘어놨다.
그는 "식사시간도 제때 챙기지 못하고 자기 자리에 앉아 알아서 챙겨먹어야 한다"며 "오늘도 연양갱으로 점심을 때웠다"고 전했다. 또 "몰래 먹는 햄버거는 직원들 사이에서 특식에 가깝다"며 너스레도 떨었다.
그러면서도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이번 카드사태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고객들의 억울한 마음을 이해합니다. 저도 유출됐고 화가 나니까요. 그런데 콜센터 직원은 아무 힘이 없어요. 그저 그분(?)들을 대신해 사과하는 일 빼고는..."
요즘엔 재발급 요청 등 고객들의 문의사항이 줄어들지 않냐는 물음에도 "아직도 정상 근무시간(아침9시~오후6시)에는 일반 콜 상담 전화는 북새통"이라며 "설 연휴를 앞둬서인지 상담빈도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콜센터 직원들은 오히려 기자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이번 사고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특히 관심이 많았다. 한 직원은 "사실 우리도 피해자로 상담받고 문의할 게 없는 건 아닌데 정작 우리는 누구에게 상담 받아야 하죠?"라며 뼈있는 한마디를 던지기도 했다.
◇카드정보 유출사고가 일어난 3개 카드사 중 한 곳의 콜센터 내부 (사진=김민성기자)
카드사태가 일어난 초반 카드3사 사장들은 금융당국의 잇단 무언의 압박에 못이겨 사퇴했다. 기자회견에서 고개 한번 숙이며 일괄사퇴로 책임을 다해버린 임원진과 뒤늦게 부랴부랴 원론적인 대책만 내놓는 당국 사이에서 콜센터 직원들은 '샌드위치'가 되버렸다.
현재 3개 카드사에서는 5000여명에 달하는 콜센터 직원이 임원진을 대신해 '사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KB국민카드 1052명, 롯데 717명, NH농협 503명 등 2271명이 근무했으나 이번 사태로 2배이상 인력을 늘린 셈이다.
하지만 24시간 근무체제로 바뀌면서 직원들의 피로는 줄어들지 않았다. 기존에는 콜센터를 주간과 심야 2교대로 운영했다면 현재는 24시간 3교대에 연장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콜센터나 전화영엽(TM) 직원들은 비정규직으로 결성된 노동조합도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콜센터 직원들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에 장기간 근속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조를 만드는 건 쉬운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인바운드 콜센터 월급은 120만원~130만원 정도 기본급에 Q&A평가, 처리한 콜의 횟수 등을 합계해 성과급이 책정된다.
일각에서는 감정노동이 심한 콜센터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업계와 당국 관계자 모두 "인·아웃바운드 콜센터 직원 처우가 좋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사태에 대한 빠른 수습이 필요하다"며 "사태가 진정되고 연장근무 등으로 고생한 콜센터 직원들에게 위로금 지급 등은 논의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위원회 앞에서 신제윤 위원장 퇴진 시위를 하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사진=김민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