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많이 피곤해보였다. 메이크업을 하지 않아서인지 더욱 지친 기색이 얼굴에 역력히 드러났다. 감기 기운이 있다고도 했다. 얼굴이 많이 상해있었다. "힘들어 보인다"는 기자의 말에 "그래도 괜찮다"며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분위기를 풀었다. 지난 2013년 tvN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를 통해 쓰레기 열풍을 낳은 장본인 배우 정우다.
최근 '응사'에서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세심하게 극중 나정(고아라 분)을 챙겨주는 캐릭터 쓰레기를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로 인기를 모으며 스타덤 반열에 오른 정우를 만났다. 갑작스러운 큰 인기가 얼떨떨하다고 하면서 "앞으로 작품을 고를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며 자세를 낮추는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정우 (사진제공=벨엑터스)
◇"주인공은 공격수..공격감 잃고 싶지 않았다"
'응사' 신드롬 이후로 가장 주가가 오른 인물은 단연 정우다. 물론 유연석, 손호준을 비롯해 도희, 김성균, 고아라 모두 입지가 높아졌다. 그럼에도 방송 및 영화계에서는 정우를 캐스팅하기 위한 노력이 상당하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심지어 "여의도(방송국)와 충무로(영화사)의 모든 시나리오가 정우를 거치고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포지션이나 분량은 확실히 업그레이드 됐어요. 그전에도 작품은 많이 들어왔었는데 많이 참았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어요. 저는 작품에서 주인공이 공격수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경험이 적다는 거죠. 영화 '바람'을 통해 주인공을 해봤고, 그때 느꼈던 공격감을 잃어버릴까봐, 수 많은 작품을 고사했어요."
지난 2009년 자신의 방황했던 학창시절을 다룬 '바람'을 통해 정우는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타며 주가를 높였다. 당시 그의 연기를 인상깊게 본 감독과 PD가 적지 않았으나, 군복무를 하게 되면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그렇게 되다보니까 기운이 떨어지기도 했죠. 그래도 주인공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버리지 못했어요. 집에서도 힘들어 했죠. 돈을 벌어와야 하는데 나이만 쌓여가고. 작품은 들어오는 것 같은데 '대스타도 아니면서' 고민만 하고 있으니 답답해 하셨죠. 그래도 저는 계속 저를 단단하게 다지고 싶었죠"
정우의 차기작이 궁금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여의도와 충무로의 시나리오를 독식하고 있는 정우가 선택하는 작품은 무엇이 될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시나리오는 많이 들어왔는데, 거의 못 읽어봤어요. 빨리 답을 드려야하는데, '응사' 촬영이 사실 너무 힘들어서 차기작 고민할 여력이 없었어요. 이 작품을 끝나지 않았는데 다음 거 스탭 밟을 준비를 하는 게 웃기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또 몸이 힘들다 보니까 시나리오가 재밌지 않더라고요. 이제 슬슬 시간이 나니까 다 읽어봐야죠. 아무래도 영화가 될 것 같아요."
'바람'이나 '최고다 이순신', '응사'에서 모두 정우는 생활 연기를 보여줬다. 다음 작품도 생활 연기가 될까. 정극 연기를 보고 싶은 대중도 적지 않을 것 같다고 질문했다.
"아껴두고 있는 무기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리얼한 연기를 좋아해요. 정극 연기를 위주로 연기를 시작했고요. 아쉽게도 흔히 말하는 힘이 들어가는 연기는 못해봤어요. 변신을 하고 싶다거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부담감은 없어요. 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할 거예요."
◇정우 (사진제공=벨엑터스)
◇'응사'와의 첫 만남, '응사'에 대한 고마움
대부분의 '응사' 출연자들은 시나리오를 받고 갸우뚱 했다고 한다. 삼천포를 맡은 김성균 역시 "이게 무슨 역할인지 도저히 감이 안 왔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사실 기존 작품들의 패턴이 느껴지지 않는 신선한 캐릭터와 스토리는 '응사' 성공의 또 다른 비결이다.
정우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신원호 PD와의 첫 만남에서 정우는 '고수'라는 강한 아우라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첫 느낌이 '고수시구나'였어요. 평범한 느낌이 감독님은 아니었어요. 말도 많이 안 했어요. 저는 이우정 작가님과만 주로 얘기했어요. 몇 가지 질문 정도만 하셨어요. 왜 그랬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제 작품은 거의 다 보신 것 같더라고요."
정우는 '응사' 시나리오를 보고는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부산 사람이니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죠. 시나리오와 대본이 탄탄했고, 디테일을 잘 잡아내셨어요. 작품이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믿고 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어요. 모든 작품에서 저는 시키는대로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무한 신뢰가 있어서 플러스 알파가 됐어요."
지난해 12월 명동에서 열린 팬 300명과의 프리허그,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의 여론은 그야말로 뜨겁다. 대세는 정우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듯 싶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높은 인기를 얻을 것이라 예상이나 했을까.
"이렇게 파급력이 클 줄은 몰랐어요. 의사 가운을 입고 나정이를 안아주면서 자는 모습이나, 과자를 툭 던져주는 행동이 이렇게 여자들한테 인기를 얻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제작진 대부분이 대중으로부터 반응이 올 법한 대사와 행동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았어요. 운이 좋아서 얻어걸린 케이스는 아닌 것 같아요."
자신의 인기에 대한 반응은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했다. 팬들이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겸손한 자세는 유지했다.
"사실 적응이 잘 안돼요. 제가 인기가 있다는 게. 과거 '바람' 때문에 영화 시상식에서 팬들의 환성을 느껴보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죠. '인기 과시 좀 할 겸 가로수길 한 번 마비시켜?' 같은 생각은 안 들어요. 이 인기를 통해 얻은 에너지로 다음 작품을 하고 싶어요. 솔직히 가장 기쁜 것은 '작품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죠. 그게 가장 행복해요."
◇정우 (사진제공=벨엑터스)
◇"열정 넘치는 고아라, 많이 배웠다"
정우에게 있어 고아라는 완벽한 파트너였다. 두 사람의 놀라울 정도의 케미스트리는 보는 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대사는 툭툭 내뱉지만, 중간중간의 감정들은 설렘을 전달했고, 진한 사랑 이야기는 아름다웠고 예뻤다. 고아라에게 있어도 정우는 완벽한 파트너였을테다.
"아라는 정말 천사 같은 친구에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연기를 할 때 가혹하다고 할 정도로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에요. 대본이 너덜너덜해요. 본 받을 점이 정말 많았어요. 그렇게 힘든데도 단 한 번도 짜증을 부리거나 웃음을 잃은 적이 없어요. 여배우들 중에 그런 친구는 없어요. 좋은 에너지를 준 친구죠."
정우는 고아라의 열정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현장에서도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고 칭찬했다.
"아라는 지금의 인기를 충분히 누려도 될 자격이 있어요. 처음에 많이 힘들어했어요. 나정이라는 캐릭터가 이제껏 해본 캐릭터가 아니고, 부담도 컸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케어를 해주는 타입도 아니고요. 지금의 인기와 나정이를 만들어낸 것 모두 혼자 다 해낸 거에요. 초반에 아라가 느꼈던 부담감을 아는 저로서는 박수를 쳐줄 수밖에 없어요."
정우는 수 십개 매체의 언론인터뷰가 끝나고 잠시 휴식기를 가지며,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광고 및 각종 스케줄을 소화한다. 그러면서 차기작을 결정할 것이다. 지난해 최고의 스타였던 정우, 실력과 내실을 겸비한 정우가 선택한 작품은 무엇이 될까. 실력에 앞서 성실함을 갖고 있기에 어떤 작품이든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는 건 비단 기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