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LG 수장들이 끊임없이 '위기론'을 꺼내들고 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1등기업'을 외치던 LG가 이제는 위기를 기회로 삼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것.
구본무 ㈜LG 회장은 지난달 2일 신년사를 통해 "앞으로의 경영 환경은 위기 그 자체"라며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야 한다"며 연초부터 긴장의 고삐를 바짝 죄어 잡았다.
구 회장은 "원화 강세와 경기회복 지연 등 경제여건이 여전히 어려운 가운데 선도기업의 독주는 더 심해지고 다른 범주에 속하던 기업과의 경쟁은 많아졌다"며 "앞서 나가던 기업들도 한 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기회를 놓치고 아성마저 무너지고 말았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그러면서 "임직원 모두가 지금이 위기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면서 "이러한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모든 경영 활동을 되짚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지난달 15~16일 경기도 이천에 있는 LG 인화원에서 열린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전략회의'에서도 위기감을 높였다.
그는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이 상존하는 가운데 세계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데다 미래 기술혁신에 대한 예측과 대응은 더 복잡해졌다고 역설했다.
◇구본무 LG 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왼쪽부터)(사진=각사)
구본준
LG전자(066570) 부회장도 신년사에서 위기를 언급했다. 구 부회장은 "올해는 위기를 뛰어넘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라며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견고한 마음가짐으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철저하게 실행하는 데 몰입하라"고 강조했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도 위기론에 동참했다. 그는 3일 임직원에게 보내는 2월 메시지에서 "지금은 위기를 직시하는 혜안과 철저한 실행력이 절실한 시점"이라며 경종을 울렸다.
최근 아르헨티나 페소화 폭락으로 촉발된 신흥국 금융불안이 세계경제를 뒤흔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원화 강세로 인해 국내수출 기업들이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엔저를 무기로 한 일본 경쟁사들의 공세와 중국기업의 부상으로 경쟁까지 치열해지고 있다는 상황이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해 까지만 해도 LG는 시장 선도와 철저한 실행을 기치로 삼아왔다. 1등기업이 아니면 성장이나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 냉엄한 현실이라는 게 주내용이다.
LG회장단이 이같이 위기론을 꺼내든 직접적인 원인은 초라한 시장 성적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선 ㈜LG의 간판 계열사인 LG전자가 스마트폰에서 힘을 못쓰고 있다. 앞서 '구본무폰'으로 불리는 옵티머스G를 앞세워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졌지만 결과를 처참했다.
이후 G2를 필두로 휴대폰 시장에서의 재기를 노렸으나 중국업체 레노버가 구글로부터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세계 스마트폰업계 3위 입지도 흔들릴 처지에 놓였다.
다른 계열사들 사정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
LG화학(051910)은 석유화학업종의 더딘 회복 속에서 중국업체의 추격까지 따돌려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박 부회장은 "셰일가스·석탄화학 등 원가 우위의 파괴적 혁신이 현실화되면서 범용 제품의 수익성 악화는 장기화될 것이 확실하다"며 "중국의 기술력 향상 등을 감안할 때 기술 기반의 프리미엄 제품도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1조 클럽에 진입한
LG디스플레이(034220)도 안심할 수 없다. 태블릿 매출 비중이 줄고 TV패널 가격 등락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수·합병(M&A)으로 고성장세를 지속해온
LG생활건강(051900)은 지난해 하반기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LG생활건강이 올해 실적 전망치도 보수적으로 내놓으면서 당분간 실적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LG상사(001120)는 전년 대비 가장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반토막 났다. 업계에서는 실적이 바닥을 찍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실적 개선 시기는 불투명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내외적인 경제 변수가 많은 데다 업황이 좋지 않고 경쟁도 심화되기 때문에 LG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위기 의식을 가지고 경영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