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활성화, 이것부터 바꾸자!)①퇴직연금, 기금형 도입하고 세제혜택 확대해야

금융위, 퇴직연금 감독규정 7월쯤 윤곽
"실적 배당형 비중 높여야"..세제혜택 확대도 요구

입력 : 2014-02-05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보선기자] '자본시장 역동성 제고'. 금융당국이 지난해 말 금융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내놓은 목표다. 경제학 이론은 '시장'에 대해 사려는 자와 팔려는 자가 만나는 자생적인 공간이라고 설명하지만 현실의 금융시장은 다르다. 돈을 만지는 기법에 따라 시장을 규제하는 '정책'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이 최악의 가뭄에 허덕이고 있는 지금, 시장의 막힌 물꼬를 터 활력을 되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규제 완화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자본시장 규제완화 움직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금융투자업계 현장에서 요구하는 방안을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투자 규제를 완화하기로 하면서 금융투자업계가 반색하고 있다. 당국은 내부적으로 관련 정책을 개정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업계도 조속한 정책 시행과 보완책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자본시장의 역동성 제고방안'을 통해 연금자산의 자본시장 투자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퇴직연금을 자본시장에 투자할 때 생기는 제반 규제와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연금자산의 주식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에 업계는 기대감이 크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모든 계열사가 고유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연금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업계는 무엇보다 규제 완화의 범위를 구체화하는게 중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퇴직연금 자산의 투자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퇴직연금 규제완화 어디까지?..7월쯤 구체화될 듯
 
◇은퇴 후 삶이 중요해지면서 근로자의 퇴직 연금 투자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DB)
 
금융위가 내놓은 '자본시장의 역동성 제고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오는 7월쯤 구체화될 전망이다.
 
금융위 자본시장국 관계자는 "호주나 미국처럼 퇴직연금이 주식시장으로 들어와 선순환하는 구조로 가겠다는 방향성을 시장에 제시했고, 이후 유관기관과 협조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투자와 관련한 법 개정은 고용노동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근퇴법)' 시행령이 고용부 관할이기 때문에 금융위가 퇴직연금 감독규정을 개정할 때 협의를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논의에 구체적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 자산운용과 관계자는 "우선 금융위 내부적으로는 퇴직연금 감독규정을 구체화해 올해 7월 안에 개정완료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금투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액은 72조원이 넘는다. 이 중 확정급여형(DB, 50조6000억원)과 확정기여형(DC, 14조9000억원) 적립액을 합하면 65조5000억원에 이른다.
 
금융위 방침은 DC형 퇴직연금을 상장주식에 투자할 수 없도록 한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기존 DC형은 투자위험을 근로자가 부담하는 만큼 주식투자에 전면 제한을 뒀다. DC는 회사가 퇴직금을 특정 기간마다 정해진 계좌에 넣어주면 개인이 운용해 자금을 불리는 구조다.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은 상장주식은 적립금의 30% 이내, 주식·혼합형펀드는 50% 이내로 투자 한도에 제한을 두고있는데, 이 역시 한도를 완화해 투자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DB는 회사가 퇴직금을 운용해 직원이 퇴사할 때 퇴직금을 지급하는 형태다.
 
 
◇주요 금융상품별 투자한도(자료=금융위원회)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운용되는 상품들은 원리금보장형 위주이기 때문에 상품 구조상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이로인한 출혈경쟁을 완화하고 퇴직연금 운용의 장기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실적 배당형 상품 편입 비중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2020년 퇴직연금 적립액이 119조원으로 추정되는데 이중 20%가 주식으로 채워진다면 7년간 증시로 유입되는 자금이 총 23조8000억원"이라고 분석했다.
 
매년 동일한 퇴직연금 투자 금액이 신규로 유입된다고 가정할 경우 그 규모는 연간 3조4000억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이다. 
 
◇업계,규제완화 기대감.."'기금형·디폴트 옵션' 고려해야"
 
금융투자업계는 당국의 퇴직연금 투자제한 완화 방침을 반기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시장은 이미 커져가고 있는데 원리금 위주로만 흘러가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빨리 제도를 정비한다면 앞으로 금리가 더 내려갈 상황을 생각할 때 퇴직연금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DB형 퇴직연금 가입의 지배구조를 바꿔 자산 운용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성인모 금융투자협회 연금지원실장은 "지금의 DB형 퇴직연금은 기업과 금융기관의 계약 형태로만 이뤄지고 있어 운용의 합리성과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기존의 지배구조를 바꿔 자산을 전문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기금형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DC형의 경우 '디폴트 옵션제'의 국내 도입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는 퇴직연금제도가 발달한 선진국에서 활성화된 운용방식으로, 근로자가 미리 정한 전략으로 자산을 운용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성 실장은 "현재로서는 개인이 상품에 대한 운용지시를 별도로 하지 않으면 보통 예·적금으로 들어가지만, 이는 그 자체가 운용수익률에 마이너스"라며 "퇴직연금이 자동적으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된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치선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구위원도 "미국에서 디폴트 옵션을 통해 투자 유도를 했을 때 장기적으로 수익률 향상에 실효가 있다는 분석결과가 있다"며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업계 한쪽에서는 원금보장형 위주의 퇴직연금 자산이 자본시장 투자활성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DC형에 대한 주식투자를 허용한다고 해서 그 투자규모가 대폭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재 상품별로 규제하고 있는 부분을 해소함으로써 기존의 퇴직연금 운용철학이 바뀔 수 있는 '시그널'을 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세제혜택 확대해야"..포트폴리오 다양화 가능성 주목
 
현재의 퇴직연금은 안전자산 위주로 운용되고 있는 기형적 구조다. 따라서 규제완화로 퇴직연금의 포트폴리오 구성이 얼마나 다양해질 지 기대를 모은다. 
 
현재 퇴직연금으로 운용되고 있는 퇴직연금 펀드 상품은 400여개에 달한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월말 기준 퇴직연금 펀드(모펀드 제외)는 398개, 설정액은 4조8791억원에 달한다. 설정액이 10억원 이상인 퇴직연금 펀드의 3년 기준 수익률 평균은 7.2%. 최대 수익률이 46%를 넘는 상품도 있다.  
 
이승현 에프앤가이드 연구원은 "퇴직연금 펀드로의 자금 유입 기대감에 신규 상품이 많이 생겼고 수익률도 좋은 편"이라며 "실적배당형으로의 자금 유입도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설정액 10억원 이상 퇴직연금펀드, 단위 % (자료제공=에프앤가이드)
 
설정액 10억원 이상의 퇴직연금펀드 3년기준 수익률은 '한국밸류10년투자퇴직연금증권투자신탁 1(주식)(A)'이 46.25%로 가장 높다.
 
이외 'KB퇴직연금배당40증권자투자신탁(채권혼합)C'(25.13%), 'KB퇴직연금배당30증권K- 1자투자신탁(채권혼합)'(21.59%), '한국밸류10년투자퇴직연금증권투자신탁 1(채권혼합)'(21.58%)이 20%대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다.
 
김동영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자산운용부장은 "중국 관련 경기민감주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최근 3년간 중소형주의 수익을 높인 점이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부장은 퇴직연금의 투자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합산해 연간 400만원 한도에서 소득공제를 받고 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는 주식투자의 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데 주식은 위험자산이라는 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커버하려면 세제혜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세제혜택에 있어서 조세당국과의 입장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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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