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조세정책)②초년생 사무관에 맡겨진 200조원

입력 : 2014-04-03 오전 8:49:12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2012년 11월.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서 곤혹스런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 글 싣는 순서
국회에 제출된 2013년도 예산안의 기준환율(원달러)이 세입예산은 1080원으로, 세출예산안은 1130원으로 다르게 표기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같은 해에 들어올 돈과 나갈 돈의 적용환율이 다르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
 
당장 야당에서는 정부가 예산안을 조작하려했던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원인은 담당 사무관의 실수였다. 9월에 예산안을 작성할 때에 한차례 환율 수정작업이 이뤄졌는데, 국회에 제출하는 자료에 이를 잘못 적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담당 사무관의 실수임이 확인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세입과 세출의 환율이 다른 것으로 보고된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설사 정부의 예산짜맞추기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보고는 통일됐어야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중요한 자료를 사무관한테 맡겨둔 것이 잘못이었다. 과장이나 윗선에서 체크를 해줘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낙회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세법개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는 모습.(사진=기획재정부)
 
◇ 3년 지나면 바꿔라..전문가가 사라지는 세제실
 
앞선 사례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정부 중앙부처에서 사무관의 역할은 그야말로 막중하다.
 
관리직급이나 고위직들의 지휘가 필요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정부정책이 이들의 손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명의 사무관과 과장이 모여서 정책초안을 마련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전문성 또한 중요한 것이 사무관인데 최근 소속 사무관의 전문성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조세정책을 입안하고, 200조원이 넘는 세입예산을 마련해야 하는 기획재정부 세제실이다.
 
세제실은 과거 재무부시절에서부터 특히 전문성이 강조됐던 실국이다. 세제분야가 워낙 전문적인데다가 단기간에 노하우를 습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사철이 되어도 세제실은 세제실 내부에서 순환하거나 같은 분야에 속하는 국세청 또는 조세심판원과의 교류인사를 할 뿐이었다.
 
그러던 인사관행이 최근 몇년사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기재부 장관인 박재완 전 장관은 2012년 초 정기인사에서 이른바 '화학적 융합인사'라는 방식을 도입해 실국간의 칸막이를 없애고 세제실과 예산실을 강제로 섞는 작업을 실행에 옮겼다. 국별로 30% 이상을 순환하라는 지침도 내려졌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이 변화는 보다 과감해졌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조직개편을 통해 각각 1차관과 2차관으로 나뉘어 있던 예산실과 세제실을 2차관 산하로 묶고, 30%의 필수인력을 제외한 나머지 인력을 모두 순환조치하는 인사를 실시했다.
 
특히 같은 부서에서 3년을 넘게 일한 사람은 무조건 다른 부서로 이동하도록 원칙을 정했기 때문에 사실상 30% 필수인력이라는 기준도 의미가 없어졌다.
 
실제로 2013년 첫 정기인사에서 450여명의 기재부 사무관 중 270여명이 자리를 옯겼고, 60명 남짓한 세제실 사무관들 중에서도 38명이 책상을 바꿨다.
 
최근 단행된 2014년 정기인사도 마찬가지다. 270명에 가까운 사무관들이 전보조치됐고, 세제실은 무려 45명이나 자리를 이동했다.
 
타 실국에서 세제실로 전입한 사무관들도 적지 않다. 2013년 정기인사에서 9명, 2014년 정기인사에서 11명이 타실국에서 세제실로 배치됐다.
 
세제실 관계자는 "세제라는 것이 2년은 해야 상황을 파악하게 되고 3년째가 되어서야 정상적으로 일을 할수 있게 되는데 3년만 지나면 바꾸라고 하니 큰일"이라고 토로했다.
 
◇ 사무관도, 과장도 어색해진 세제실
 
문제는 사무관인사에 그치지 않는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과장급 정기인사에서 세제실 과장 18명 중 14명을 교체했다.
 
세제업무를 했던 경험이 있는 과장들도 있지만 전보자의 절반인 7명이 다른 실국에서 왔다.
 
전체적으로 현재 세제실 과장급 중 절반 이상이 이른바 전통적인 '세제맨'이 아닌 구성으로 짜여지게 됐다.
 
그나마 있는 세제맨들조차 조만간 승진을 위해 세제실을 떠나야할 상황이다.
 
조세정책의 초안을 짜는 사무관과 과장들이 모두 이른바 '초짜'로 구성될 경우 사태는 심각해질 수 있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세제실에서 보면 일종의 위기"라면서 "사무관도 중요하지만 세제실은 특히 과장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과장들조차 업무가 생소한 상황이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당장 이달부터 진행되는 올해 세법개정안 작업이 걱정이다.
 
세제실 출신인 한 전직 관료는 "임기 첫해만큼 복잡하진 않겠지만 올해도 여러가지 쟁점이 되는 세제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 "세제실이 여러모로 일하기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료는 또 "세제개편안 작업을 하다 보면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야 할 일이 많은데 전문성이 떨어지게 되면 설득력 자체도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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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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