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앨범을 발표한 악동뮤지션. (사진=YG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악동뮤지션의 데뷔 앨범이 공개됐습니다. 다들 들어보셨나요?
앨범이 공개되기 전부터 관심이 대단했습니다. 단순히 악동뮤지션이 SBS ‘K팝스타2’의 우승자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악동뮤지션은 사실 ‘K팝스타2’의 참가자들 중 가장 가창력이 뛰어난 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팀들과 달리 자신들이 직접 쓴 노래로 오디션에 참가했고, ‘매력있어’, ‘다리꼬지마’와 같은 곡들은 기성 가수들의 노래 못지 않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 악동뮤지션이 데뷔 앨범에선 어떤 노래를 선보일지 기대가 모아졌던 것이죠.
악동뮤지션은 데뷔 앨범을 열 한 곡이 꽉 채워진 정규 앨범으로 냈습니다. 스스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작사, 작곡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열 여덟살의 오빠 이찬혁과 열 다섯살의 여동생 이수현이 함께 만든 이 앨범은 충격적입니다. 오빠 이찬혁이 모든 노래의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맡았습니다.
한국 가요계의 전설적인 그룹으로 꼽히는 서태지와 아이들은 22년전에 데뷔했습니다. 서태지가 지난해말 “한물간 원로가수”라고 스스로를 표현할 정도로 오래된 일이네요. 서태지가 작사, 작곡, 편곡한 노래 ‘난 알아요’는 가요계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후 국내 가요계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서태지는 이후 천재 뮤지션으로 불리며 가요계를 주도했었죠. 당시 서태지의 나이가 스무 살이었는데요. 서태지보다 두 살이 어린 나이에 이찬혁은 가요계의 판도를 흔들만한 노래들을 내놨습니다. 재밌는 건 서태지의 곁에도, 악동뮤지션의 곁에도 양현석이란 사람이 있다는 것이네요.
타이틀곡은 두 곡입니다. 그리고 악동뮤지션은 팬들의 반응에 따라 타이틀곡 한 곡을 추가할 예정인데요. 우선 타이틀곡 중 하나인 ‘200%’에 대해 살펴보죠.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멜로디의 사랑 노래입니다. 이번 앨범 수록곡 중 가장 대중적인 노래 중 하나입니다. “It must be L.O.V.E 200 percent, sure of that I want you really I mean really”란 영어 가사로 된 후렴구가 톡톡 튀는 리듬과 함께 귀에 쏙 들어옵니다. “정말이야 널 좋아하는데 빨갛게 익은 내 얼굴이 그걸 증명해”와 같은 가사에선 악동뮤지션다운 신선한 표현력이 돋보이네요.
또다른 타이틀곡인 ‘얼음들’은 다소 의외의 노래입니다. 발랄한 느낌의 노래를 하는 줄만 알았던 악동뮤지션이 차분한 분위기의 노래를 들고 나왔습니다. 리드미컬한 피아노 선율과 웅장한 스트링 사운드가 결합된 느낌이 새롭습니다. “어른들 세상 추위도 풀렸으면 해 얼었던 사랑이 이젠 주위로 흘렀으면 해”라며 10대의 입장에서 본 어른들의 세상에 대해 노래합니다. ‘어른들’을 ‘얼음들’에 빗댄 “얼음들은 왜 그렇게 차가울까 차가울까요”란 가사가 재밌으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1번 트랙의 ‘Give Love' 역시 대중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 노래입니다. 경쾌한 리듬의 이 사랑 노래는 “Give Love 사랑을 좀 주세요 Give Love 사랑이 모자라요”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입니다. 팬들의 반응에 의해 정해질 세 번째 타이틀곡의 강력한 후보 중 한 곡이 될 것 같습니다.
악동뮤지션의 노래가 특별한 이유는 악동뮤지션만의 독특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독특함은 장르와 소재의 차이에서 나타납니다. 아이돌들의 댄스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요계에서 포크 장르를 기반으로 한 악동뮤지션의 노래는 색다른 감성을 전달합니다. 악동뮤지션의 음악엔 첨가물을 더하지 않은 날 것과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악동뮤지션이 부르는 노래의 소재는 흔한 사랑 이야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4번 트랙의 ‘지하철에서’는 지하철 속 사람들의 모습을, 5번 트랙의 ‘가르마’는 가르마를 바꿔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준 한 소녀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또 6번 트랙의 ‘인공잔디’에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모습을 인공 잔디에 비유해 노래를 했고, 7번 트랙의 ‘안녕’에선 왕따가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노래를 합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흔한 사람들의 눈빛을 재미있게 풀어낸 9번 트랙의 ‘길이나’와 작곡 소재가 다 떨어졌다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녹여낸 10번 트랙의 ‘소재’도 참신합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음악을 만들었을까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나이가 아니면 이런 표현을 해내지 못할 거란 생각도 듭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눈여겨 보는 10대다운 관찰력이 돋보입니다. 특이한 건 10대의 순수한 감성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생각을 담은 노래들이 30대나 40대의 감성까지 자극을 한다는 건데요. 여기에 악동뮤지션의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2008년 몽골에 가 그곳에서 작사, 작곡을 시작했던 남매의 티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노래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듯합니다.
‘지하철에서’의 가사를 잠시 볼까요.
“북적북적이는 출퇴근 시간. 정장 교복 할 거 없이 빽빽한, 내가 들어서면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차버린 전동차의 풍경. 그리고 앉아있는 자의 여유 후후. 심하게 조는 자를 향한 야유 후후. 지하철은 세상의 축소판.”
10대든, 20대든, 30대든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찬혁은 랩의 라임도 참 재미있게 잘 맞췄습니다. ‘안녕’의 가사인데요.
“늘 내게만 똑같은 태도 내게만 드리워진 shadow 잃어버린 궤도에 홀로 파도 속에 남겨진 배도.”
비슷한 발음의 단어인 태도, shadow, 궤도, 홀로, 파도, 배도를 나열하면서 리듬감을 만들어냈습니다. 뻔하지 않은 단어들의 나열을 통해 라임을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8번 트랙의 ‘작은 별’은 “저게 인공위성일까 별이었으면 좋겠다. 눈에 안 보일 뿐이지 별은 사라지지 않아. 나이를 먹은 하늘 눈이 침침할 뿐이야. 여전히 별은 빛난대”와 같은 가사로 밤하늘의 빛나는 별에 대한 생각을 그려냈습니다. 또 달콤한 멜로디 라인으로 은하수에 대해 노래하는 11번 트랙의 ‘갤럭시’를 통해선 악동뮤지션의 소년, 소녀다운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앨범 발표 전부터 이찬혁의 프로듀싱과 작사, 작곡 능력에 많은 관심이 쏠렸었는데요. 사실 동생 이수현의 보컬 실력도 놀랍습니다. 열 다섯 살이란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인데요. 경쾌한 리듬의 노래인 ‘Give Love'나 ’200%‘에선 톡톡 튀는 창법을 선보이다가도 ’얼음들‘과 같은 차분한 노래에선 읊조리듯 노래를 합니다. 이렇게 톤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모습은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가수를 연상시킵니다.
악동뮤지션의 데뷔 앨범은 발표되자마자 각종 온라인 음원 차트 상위권에 수록곡들을 올려놓으며 ‘줄세우기’에 들어갔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요계에서 데뷔 앨범으로 이와 같은 성과를 낸 팀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무서운 10대들이네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후 국내 가요계엔 댄스 음악과 힙합 음악을 하는 그룹들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몇해 전 아이유가 큰 성공을 거둔 후엔 비슷한 느낌의 여성 솔로 가수들이 데뷔했죠. 그만큼 가요계가 유행에 민감하다는 얘기인데요. 머지 않아 악동뮤지션과 같은 혼성 듀엣이 줄줄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이돌 가수로 데뷔시킬만한 새 얼굴을 찾기 위해 미국이나 중국, 동남아시아 등의 시장에 주목했던 가요 기획사들이 이제 악동뮤지션과 같은 원석을 찾기 위해 몽골로 떠나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 악동뮤지션 정규 1집 'Play' >
대중성 ★★★★☆
음악성 ★★★★★
실험성 ★★★★☆
한줄평: 서태지 이후 가장 충격적인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