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박주영(29)의 현재 소속팀은 왓포드다. 원소속팀은 아스널이다. 하지만 월드컵 전까지 그의 소속팀은 정해졌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라 하는 게 옳아 보인다. 매우 특이한 경우다.
축구대표팀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홍명보 감독은 이미 90% 이상을 채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주영의 "소속팀 복귀 불가론"을 얘기했다. 박주영은 국내에서 이케다 시이고 피지컬 코치와 함께 재활에 힘쓸 예정이다. 이후 곧장 대표팀 최종명단에 포함돼 브라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계획이다. 협회와 대표팀에서 그를 관리한다.
◇축구대표팀의 박주영. 그는 월드컵 전까지 국내에서 훈련할 예정이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런던올림픽을 앞둔 상황과 똑같은 모습이다. 다만 지금은 부상이 있다. 봉와직염이 박주영을 괴롭히고 있다. 부상회복과 경기력 끌어올리기라는 두 가지 과제가 남아있다.
여론은 또다시 둘로 갈렸다. 박주영을 위한 팀이냐는 비판과 그래도 뽑을 수밖에 없는 정상급 선수라는 의견으로 나뉜다. 어느 쪽으로 더 기우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홍명보호 출범 이후 논쟁거리였던 박주영의 대표팀 합류가 기정사실로 됐다는 것이다.
초점을 다른 쪽으로 돌려보고 싶다. 왜 박주영 아니면 안 되느냐는 것이다. 이는 정상급 스트라이커의 수가 급격히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순호, 황선홍, 김도훈, 안정환 등 ‘한 방’을 기대할 수 있는 공격수가 어느 순간 한국축구에서 끊겼다. 이동국이 있긴 하지만 어쩐지 홍명보호와는 멀어진 느낌이다. 비운의 스타다.
홍명보 감독이 처음부터 박주영만을 바라본 것은 아니다. 취임 이후 국내 정상급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김동섭(성남), 조동건(수원), 조찬호(포항), 서동현(안산), 이근호(상주), 김신욱(울산)이 시험대에 올랐다. 당시 이들 모두 K리그에서 수준급의 득점력을 보였다.
하지만 이근호와 김신욱을 빼고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때부터 축구전문가들 사이에선 "박주영을 한 번 시험 해봐도 괜찮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홍명보 감독이 "팀에서 뛰는 선수가 선발 원칙"이라고 선을 그었음에도 주위에서 먼저 박주영 얘기를 꺼냈다. 그의 대표팀 복귀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상주상무의 이근호. 그에게 이번 월드컵은 매우 간절하다. 최근 이근호는 정확한 무릎 부상 진단을 위해 병원 5군데를 돌아다니며 진단 받은 사실이 알려져 관심을 모았다. ⓒNews1
박주영이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홍명보호를 괴롭혔던 것이 골 결정력과 빈곤한 득점력이었다. 유럽파가 합류해 손흥민, 구자철 등이 평가전에서 골을 넣어도 "스트라이커가 아닌 미드필더에서 득점이 나왔다"는 비판이 따랐다.
한때 홍명보호는 구자철을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 놓는 '제로톱' 전술을 시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효율성에서 떨어졌다. 박주영이 공론화된 요즘은 적어도 결정력 문제가 대두하지는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선수들이 만들었다. 그들의 의지를 짚고 싶다. 간절함과 그에 따른 노력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다. 이근호는 지난 월드컵에서 낙방한 경험이 있어 부상에 '부'자만 떠올라도 몸서리를 치고 있다.
김신욱은 월드컵이 더 간절하다. 행동으로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페루와 평가전을 앞두고 제외됐다. 하지만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밸런스 운동과 단점 보완에 힘써 끝내 11월 대표팀에 다시 올랐다. 박주영과 함께 최전방 공격수로서 브라질월드컵 출전이 유력하다.
지금 K리그에서 대표팀 공격수 명단 언저리에 있던 선수들은 모두 부진하다. 김신욱과 김승대(포항)가 5골로 경합하는 사이에 그들의 이름은 득점 순위표에 안 보인다. 박주영, 김신욱 외에 누군가를 선발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에 앞서 명분이 먼저 떨어진다.
뛰어난 스트라이커가 사라진 원인은 저마다 분석이 다르다. 유소년 축구를 가르치는 한 관계자는 "어릴 적부터 잔디에서 공을 차지 않았기 때문에 세밀함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하곤 한다. 물론 이 경우 최근에는 환경이 달라져 앞으로 나올 선수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뒤따른다.
일부 나이 많은 팬들은 "예전보다 연봉도 많이 받고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니까 발전하려는 의지가 없는 거지 뭐"라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 또한 과거 축구선수들의 수입을 고려하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몇몇은 '티키타카' 같은 짧은 패스 위주의 축구 전술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그들은 이런 전술이 스트라이커의 기량 발전에는 큰 득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선 굵고 파괴력 있는 공격수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없다는 분석이다.
◇(왼쪽부터)이청용, 손흥민, 구자철. (사진캡쳐=대한축구협회)
다른 각도에서도 바라볼 수가 있다. 중요한 사실은 한국축구 전체가 과도기에 있다는 점이다. 벨기에 대표팀의 대부분이 자국 리그가 아닌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고 하는데 한국 대표팀도 못지않다.
베스트 11을 추리면 골키퍼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공격진이 특히 그렇다. 손흥민(레버쿠젠), 기성용(선덜랜드), 구자철(마인츠), 이청용(볼튼) 모두 독일과 잉글랜드에서 뛰고 있다.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꼽히는 이명주(포항) 같은 경우는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 그 정도로 역대 어느 대표팀과 비교해도 이번 대표팀의 경력만큼은 화려하다.
하지만 이런 발전 가운데 유독 대형 스트라이커가 탄생하지 않고 있다. 수비수인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가 유럽 진출에 도전했음에도 공격수만큼은 없다. 그래서 박주영의 소속팀이 대표팀이란 볼멘소리가 나와도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박주영은 조만간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 한다. 대표팀 전방을 책임질 그의 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박주영 독주체제를 만든 한국축구의 스트라이커 기근에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