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우우우우. 텔미 나우 나우 나우(Tell me now now now).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망설이지 마. 더 늦기 전에…." 걸그룹 포미닛의 현아와 그룹 비스트의 장현승으로 이뤄진 트러블메이커가 내놓았던 '내일은 없어'의 가사다. 이 노래를 '중년'의 가수가 불렀다면?
누군가는 '어르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손사래를 칠 것이다. 중년을 바라보는 부정적 관점 탓이 크다. 중년은 흰머리에 배가 나오고 성적 매력이 없으며 고용되기도 힘든데다 심리적으로도 위기를 겪고 있다는 관점 말이다.
뉴욕타임스(NYT)에서 문화와 예술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 패트리샤 코헨이 쓴 책 '나이를 속이는 나이'(원제 In Our Prime: The Invention of Middle Age)는 이런 고정된 관점에 대해 즉각 반박한다.
책은 "중년이란 개념은 만들어진 것으로 세계 곳곳에서 서로 다르게 형성된 문화적 허구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책은 이처럼 중년이란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역사적·사회적·심리적·의학적 배경을 종횡무진 누빈다.
저자에 따르면 20세기 초반만 해도 중년이란 개념은 모호했다. 어린이와 성인, 노인이라는 구분만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확한 나이를 잘 알지 못했거나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영어권에서는 생일을 축하한다는 의미의 해피버스데이라는 용어가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19세기 말에도 생소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변하면서 시간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가 됐다. 노동에도 효율성이란 개념이 나타났다. 과학적 관리법의 프레더릭 테일러가 한 사람의 노동자를 일정 시간 동안의 생산성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나이에 따른 특성을 무시했다. 육체적 역량에만 관심이 있었다. 정신적·도덕적으로 이해하던 인간의 삶을 경제적인 요소로 평가하게 된 것이다. 이는 생산성이 높은 청년이 중년이나 노년보다 소중하다는 견해로 이어졌다.
저자는 특히 오늘날 중년의 삶이 20세기를 풍미한 자기계발과 대량소비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강조한다. 미디어와 광고업자 등이 이런 시도를 주도했다. 이들은 의학산업과 섹스산업 등과 함께 '중년산업 복합체'라는 게 저자의 평가다.
중년산업 복합체는 20세기 초 대량판매가 시작된 이후 영화와 잡지들이 젊은 층과 중년 층의 외모를 대비시켜 나이는 불리한 조건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여야 한다는 동안 마케팅은 20세기 초부터 유행했다. '당신의 피부는 실제 나이보다 더 젊습니까?'라는 광고 문구는 1923년에도 있었다.
안티 에이징(노화 방지)라는 개념도 뜯어보면 노화를 인생의 자연스러운 진행이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젊음이란 상품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판매하기 위해서다. 이는 섹스산업에도 적용됐다. 중년의 남녀는 경험이나 지혜보다 20~30년 어린 사람을 모방하는 능력으로 더 큰 박수를 받는다.
중년에게 자기계발을 강요하는 세태의 이면도 꼬집는다. 중년 노동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해고와 소득 불균형 등은 국가 정책과 사회 권력이 만든 것이지만, 보톡스를 맞고 젊어져서 경쟁하라는 게 중년산업 복합체의 주문이다.
21세기에도 성공적인 중년의 삶은 젊음을 흉내 내는 것이라고 여기는 선입견은 지속되고 있다. "못생긴 여자란 없다. 오직 게으른 여자만 있을 뿐"이라고 다그치는 화장품 사업가 헬레나 루빈 스타인의 말처럼.
책은 지구를 절반으로 나누는 수많은 가상의 선 중 하나인 자오선을 통해 중년이란 개념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선까지만 나갔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 속에 존재하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중년 세대는 중년산업 복합체가 만든 개념 속에 갇히지 않고 더 늦기 전에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