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가 국가 정책을 세우면서 공청회 등 의견수렴 절차를 무시한 일방적인 사업추진을 강행해 논란이다. 정부는 관계법령을 따랐기에 문제가 없다지만 '밀실처리'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 자칫 정책 추진명분을 잃기 쉽다는 지적이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국무회의를 열고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울 때 공청회를 열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담은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앞으로 발전 사업자가 발전소 등을 지을 때 지역 주민과 논의를 하지 않아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으며, 설명회 등이 무산될 경우 이를 따로 안 열어도 문제가 없게 됐다.
송전탑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는 밀양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조치는 앞으로 정부와 주민 간 갈등을 계속 부추길 빌미를 남긴 셈. 에너지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의무는 저버리고 사업자 편에 서서 그들의 편의만 봐줬다고 비판했다.
에너지정의행동 관계자는 "그동안 전기사업법에 따른 설명회 등은 1회로 한정돼 형식적으로 진행됐고 지역 주민은 정책 수립과정에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며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법을 고쳐서라도 사업추진을 용이하게 하는 게 아니라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하는 노력"이라고 지적했다.
'국가 백년지대계'라는 국가 정책이나 법 개정, 외국과의 협상 등에서 민의가 무시되는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제2의 밀양사태라 불리는 가로림만 발전소 사태도 마찬가지다.
◇가로림만 발전소 위치도(사진=한국서부발전)
가로림만 발전소는 한국서부발전이 충남 태안군과 서산시 사이에 위치한 가로림만에 1조원을 들여 2㎞ 길이의 조력댐과 발전소(52만㎾급)를 짓겠다는 계획이지만, 갯벌을 메우고 물길을 막아야 하므로 어장과 주변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환경 관련 시민단체와 서산시는 물론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과 국립환경과학원 등 국책기관까지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내고 가로림만 발전소에 반대했지만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활성화와 지역경제 발전을 내세우며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밖에 의료산업 활성화는 국민 여론은 물론 의료계의 의견조차 제대로 수렴하지 않아 의료 민영화 논란을 낳았고, 철도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공기업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코레일 자회사 설립안은 철도 민영화 시비 끝에 철도노조 파업을 부르기도 했다.
이에 정부가 경제와 사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는 국책 사업은 지속가능 원칙에 따라 사업을 계획하고 이해관계자 의견을 폭넓게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국가 정책은 사업의 타당성과 일원화된 추진체계 마련만큼이나 올바른 정보제공과 의견수렴이 필수적"이라며 "투명한 정책 추진을 못 하면 시장에서 신뢰를 잃고 정책 추진 명분과 국정 리더십까지 손상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연구원 관계자 역시 "대형 국책사업일수록 법과 원칙에 따른 절차적 합리성과 의견수렴을 통한 타당성 확보라는 내용적 합리성이 모두 중요하다"며 "정부는 민·관 네트워크, 지역 네트워크 등을 강화해서 상시적인 합의형성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