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지난달 30일 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의 효성 타이어코드 공장. 조용한 외부와 달리 실내로 들어서자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소리가 연신 귓전을 때렸다.
폴리에스터 칩을 녹여 실을 만드는 코드생산팀에서 연사기가 돌아가는 소리다. 이곳에서 뽑아낸 하얀색 원사는 언뜻 보기에 한 가닥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어다보면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수백 가닥이 모여 있다. 용도에 따라 작게는 250가닥, 많게는 400가닥을 꼬아 한 줄을 만들고, 이 실을 베틀에서 짜낸 뒤 암모니아로 화학 처리를 하면 타이어코드가 완성된다.
흔히 타이어 재료하면 새까만 고무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타이어 내부를 들여다 보면 섬유소재인 타이어코드를 비롯해 철 소재의 스틸코드와 비드와이어 등 보강재들이 들어 있다. 자동차의 안정성과 내구성, 주행성을 보강하기 위해 여러 소재들을 채택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타이어코드는 타이어 보강재의 핵심으로 일컬어진다. 고무 내부에 타이어코드를 넣음으로써 고무의 짧은 수명을 늘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타어어코드는 자동차 타이어의 내구성 강화는 물론 안전과 성능에도 밀접한 영향을 미치면서 자동차 시장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효성 울산공장에서 생산된 타이어코드.(사진=효성)
◇효성, 국내 최초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 상용화 첫발
효성은 지난 1967년 동양나이론(효성의 전신)이 울산공장을 완공하며 타이어코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 초기 나이론을 원료로 쓰다가 1978년 폴리에스터로 타이어코드를 생산했다. 국내에서 폴리에스터 원료를 쓴 것은 효성이 최초다.
효성(004800)은 지난 2000년 울산공장의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 공장 증설을 완료한 데 이어 2002년부터는 해외로 발을 넓혔다. 2002년 미국 미쉐린으로부터 타이어코드 공장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중국 가흥에 생산기지를 설립했다. 이어 2006년에는 미국 굿이어타이어로부터 공장 4곳을 사들였고, 2008년에는 베트남 호치민에 타이어코드 공장을 완공해 상업생산에 나섰다.
이 같은 외형적 성장에 힘입어 효성은 지난 2004년 세계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선 이래 10년째 업계 최고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효성의 세계 타이어코드 시장 점유율은 올해 기준 45%로, 2위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 PFI(18%), 코오롱(12%)과 비교해 압도적 격차를 보인다.
◇세계 1위 수성 비결은 '한우물'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비결은 무엇보다 원가와 기술면에서 경쟁사를 압도하는 경쟁력이 꼽힌다. 효성은 타이어코드뿐만 아니라 폴리에스터 칩의 원료가 되는 PTA(고순도 테레프탈산)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 매암동 울산공장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용연공장으로부터 PTA를 가져와 타이어코드 완제품을 만드는 일괄생산체계를 갖췄다. 원재료비는 물론 물류비 부담도 덜게 됐다.
30년 이상 한 우물을 판 사업전략도 경쟁력 중 하나다. 오랜 기간 제조를 통해 터득한 노하우와 숙련된 작업자들이 품질 경쟁력을 유지시키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글로벌 타이어 업체인 미쉐린과 굿이어타이어가 타이어코드 생산기지를 매각하고, 타이어 제조에 집중키로 한 것도 품질과 원가 경쟁에서 더 이상 승부를 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철수다.
◇효성 울산공장에서 직원이 타이어코드의 품질을 검사하고 있다.(사진=효성)
특히 울산공장은 타이어코드 사업의 마더플랜트(Mother Plant)로서 막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울산공장은 생산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 미국, 브라질, 유럽(룩셈부르크) 등 해외 공장에서 동일한 품질의 타이어코드가 나오도록 기술과 생산 전반을 관할하는 컨트롤타워 역할도 겸하고 있다. 울산 공장에서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공정 개선이 이뤄지면, 해외 사업장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황정모 울산공장장(전무)은 "타이어코드 원료 확보에서부터 생산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이 울산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특히 30년 이상 사업을 통해 얻은 소프트웨어 역시 품질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급성장은 잠재 리스크
10년째 세계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는 효성에도 위험요소는 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현지 타이어코드 업체들이 빠르게 커나가고 있는 점은 잠재적 리스크다. 중국 타이어코드 업체들이 생산시설을 공격적으로 증설하며 공급과잉을 야기하고 있고, 품질 경쟁력도 상당부분 끌어 올려 해외로 발을 넓히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타이어코드의 진입 장벽이 높아 중국 업체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동차 소재는 사람의 생명(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품질 기준이 의료용 소재에 버금갈 정도로 까다롭다. 타이어 업체별 인증심사를 받아야 납품이 가능한데, 최소 2~3년의 시간이 걸려 신규 진입 업체들은 운전자금 등에 대한 부담이 큰 실정이다.
효성은 급성장세를 타는 후발 업체들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타이어 제조사와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고객사와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맺고, 수시로 접촉해 타이어 업체들의 니즈(needs·욕구)를 파악하고, 제품 생산에 이를 반영한다. 일종의 맞춤형 전략인 셈이다.
국내를 포함한 해외 생산거점의 품질 관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 결과 2014년 현재 울산공장의 불량률은 지난 2005년 대비 6%포인트나 낮아졌다. 해외 공장과의 불량률 격차도 0% 이하로 유지하는 등 품질 경쟁력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황 공장장은 "1위 자리를 수성하기 위해서는 경쟁 업체들과 차별화된 서비스와 제품을 (고객사에) 제공해야 한다"면서 "수시로 타이어 제조사와 만남을 가져 니즈를 파악하는 것과 더불어 정기적으로 해외 생산거점을 방문해 품질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저한 품질관리가 오늘의 효성을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