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장안평 중고자동차시장, 격변을 꿈꾸다

입력 : 2014-05-08 오후 5:44:26
[뉴스토마토 이충희기자] 지난 7일 오전 10시. 서울 장한평역을 나오기가 무섭게 베테랑 호객꾼들이 기자를 살갑게 잡아끌었다. "뭐 찾아요? 다 있으니까 말만 해요." 평일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일대 주변에는 중고차 딜러들이 삼삼오오 모여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취재차 들렀다고 하니 접근했던 호객꾼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활기찬 표정을 되찾고 이곳이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면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곳을 현대화한 중고차 시장으로 재개발한다는데, 생긴 지 40년 넘었으니 이제 좀 바뀔 때도 됐지"라고 한 딜러가 운을 뗐다. 이어 "근데 뭐 언제 한다는 건지 맨날 계획만 하고 안해요"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시가 지난 3월 장안평 일대를 자동차산업의 중심지로 재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을 곱씹고 있는 인근 일대 상인들의 기대와 우려가 섞인 한탄이었다.
 
◇7일 국내 중고자동차시장의 원조 장안평 일대를 찾았다.(사진=이충희기자)
 
서울시가 발표한 '자동차산업 도시재생모델 육성사업'의 주무대인 장안평 중고자동차시장. 장안평 중고자동차시장은 70년대 후반부터 들어선 4개 건물을 중심으로 64개의 중고차 매매업체가 성업 중이다. 주변의 부품사까지 모두 더하면 자동차 관련 상사만 650여개가 모여있는 곳으로, 국내 최대 중고자동차·부품 유통단지다.
 
주변에서 만난 딜러들에게 이곳의 경기가 어떤지 물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중고차를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년전부터 대기업이 운영하는 중고차회사와 인터넷 중고차 직거래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70년대 후반 생겨난 이곳 '재래식' 중고차시장이 타격을 입지 않았을까 하는 기우는 현실과 달랐다.
 
지난해 중고차 연간 거래량만 330만대를 넘어설 정도로 새로운 거대 유통시장을 구축하고 있어, 신시장에 수요를 빼앗기고 쇠퇴해 간다는 이곳도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30년 경력의 박용규 딜러는 "2년 전쯤에는 팀에서 한 달에 20대정도 팔았는데 요즘엔 조금 줄어 10대에서 15대정도 팔고 있다"고 말했다. 20년 경력의 이진영 딜러도 "7명이 팀 단위로 움직이며 한 달에 30대 이상 팔고 있다"고 말했다.
 
중고차 시장에서 가장 매매가 활발한 아반떼 MD를 보고 싶다고 하자 딜러가 파란색 수첩을 꺼내들더니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이 수첩은 중고차 매물 정보가 담긴 포켓용 인쇄물인데 1주일에 두 번 발행된다. 수첩에는 차종과 연식, 해당 차량을 판매하는 딜러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장안평 일대 모든 중고차 매물이 이 수첩 하나에 집적돼 있어 이곳 딜러들에게는 필수 아이템이다.
 
◇장안평 중고자동차시장의 모든 매물이 적힌 딜러들의 필수 아이템.(사진=이충희기자)
 
아반떼만 해도 수십개의 매물이 있었는데 딜러가 가장 괜찮은 녀석이 조금 전에 팔렸다면서 아쉬워했다. 여러 곳에 다시 전화를 돌려보고는 조금 전 괜찮은 차가 들어왔는데 지금 광택작업 중이라고 했다. 차를 보려면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해서 작업 중인 곳으로 차를 태워 안내하겠다고 했다. 딜러의 차를 타고 중고차 시장 주변에 늘어선 정비업소 쪽으로 향했다.
 
이곳 작업장에서는 새롭게 매물로 들어온 차들의 내·외부를 말끔하게 청소해 두세시간여 만에 다시 새차처럼 만들어 낸다. 본넷까지 열어 찌든 때를 꼼꼼히 벗겨낸다. 좀전에 새차처럼 보였던 중고차들 모두가 이곳을 거친다. 동행한 딜러는 지금 이곳에서 차를 구입하면 싸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중고차시장에 들어가면 딜러가 주차비 30만원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고자동차를 새차처럼 '변신'시키는 정비업소가 모여있는 거리.(사진=이충희기자)
 
발걸음을 돌려 주변 부품 상가를 찾았다. 서울 중구 일대 도심에 있던 자동차 부품 상권이 정부의 이전 정책으로 1982년 집단 이주했는데, 현재 이곳에만 300여개가 밀집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업주들은 3월 발표한 서울시 정책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많았다.
 
상가 B동에서 튜닝부품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의 한 사장은 "2009년부터 바뀐다 만다 했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될런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장안평 중고차매매시장이 2009년 3월 현대화를 위한 도시계획 변경 사전협상신청서를 제출한 뒤 사업이 지금까지 지지부진했던 것을 탓하는 것이었다. 정책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바닥이었다.
 
◇자동차 튜닝, 부품업체와 중고차 딜러들의 사무실이 모여있는 상가동. 총 4개동으로 이뤄져있다.(사진=이충희기자)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장안평 일대와 중랑물재생센터의 서울재사용플라자를 잇는 서울 성동·동대문지역 일대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 중심지이자 세계적 리사이클 중심지'로 개발된다.
 
서울시는 이곳을 자동차 매매와 부품유통 등 지역 선도 산업으로 육성하는 한편, 재활용산업의 성장 발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장안평 일대 지역산업발전계획' 수립 용역을 올해 안으로 발주시키고, 산업유통산업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할 예정이다.
 
또 내년 말까지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끝낸 뒤 상인들에 대한 세제 혜택과 융자금 지원 등이 가능토록 제도를 개편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인근 대학인 한양대와 자치구, 서울시 등이 참여하는 산업의 전략적 재생방안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 발전방향을 모색한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장안평 일대를 중고자동차 매매·자동차 부품 산업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자료=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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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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