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황민규기자] 떠들썩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위독설이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
중환자실에 머물던 이 회장이 일반병실로 옮겼고, 병상을 지키고 있던 두 딸 이부진·이서현 사장은 다시 경영활동에 나섰다. 병원을 떠나지 않던 취재진도 하나둘 발걸음을 출입처로 옮겼다. 겉으로만 보면 평온하기 그지 없다. 이 회장 입원 13일째 풍경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20일 이 회장의 병세에 관해 한 차례 설명한 뒤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은 "모든 검사결과가 매우 안정적이고 상태가 호전돼 어제 일반병실로 옮겼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머무는 일반병실은 병원 20층에 마련된 VIP병동으로, 엄격한 통제는 물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담당하던 전용 의료진과 의료기기가 그대로 이동, 배치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중환자실과 큰 차이가 없다는 설명.
다수의 대학병원 관계자들은 "일반인이라면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이동한 것은 확실히 병세가 호전됐다고 볼 수 있지만, 이 회장이 있는 VIP실은 중환자실에 준하는 전용 의료진과 의료기기가 배치된다"며 "멸균과 면회의 제한 등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중환자실과 같은 조건으로 봐도 된다"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입원해 있는 삼성서울병원(사진=뉴스토마토)
이는 곧 이 회장의 병세가 장기화됨을 의미한다. 시중에 떠돌던 급박한 위험성은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눈에 띌 만한 호전도 보이질 않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설명대로라면 이 회장의 뇌파와 심장기능이 검사 결과 대단히 안정적일 뿐이다.
삼성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당분간 우려하는 급박한 상태는 없을 것 같다"며 "현 상태가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특별히 변화된 상황이 없는 것 같다"며 "병원 설명 외에 추가로 확인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을 아꼈다.
대중적 관심도가 낮아진 가운데 의료계의 시선은 이 회장의 의식 회복 여부에 머물러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금껏 이 회장의 의식을 깨울 시점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환자 보호 원칙 아래 구체적 병세를 알리지 않겠다는 의도다. 이 회장은 현재 진정치료를 통한 수면상태로,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이에 대해 대형병원의 한 심장내과 전문의는 "그만큼 신중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상황이 어렵다고도 볼 수 있다"며 "뇌 손상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능 손상의 정도는 주치의가 아닌 만큼 정확한 소견을 피력하는 것은 어렵다며, 대신 "정상적 회복은 힘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경외과 전문의 출신의 한 대형병원장은 "뇌파만으로는 뇌기능을 판단할 수 없다"면서 "의식을 깨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 의료진도 제일 답답해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저체온 요법과 진정치료가 일주일 이상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분명 특수한 사례"라면서 "안 깨우는 게 아니라 못 깨우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입원해 있는 강남구 삼성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내원객들이 텔레비젼으로 이건희 회장 병원입원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News1
이런 가운데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5일 이 회장의 심장이 한 차례 더 멎는 급박한 상황이 연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확인해 줄 수 없다"며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의료진의 설명대로 "안정적인 상태에서 회복 중"이라고만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흉부외과 전문의는 "저체온치료 중에 추가 심정지가 왔다면 기능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첫 번째 심정지가 관상동맥 때문인데, 두 번째 심정지도 1차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재발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심장내과 전문의는 "일반적으로 급성 심근경색으로 심정지가 왔던 환자들은 추후에 재발할 확률이 높다"며 "진정치료가 진행 중이라면 자가호흡은 어려운 상황으로, 심폐기능이 알려진 것보다 좋지 않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재계에서는 삼성이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경영권 승계 준비에 돌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지분 조정 등 그룹 재편은 지난해부터 속도감 있게 진행돼 왔다. 각 계열사들 간 복잡하게 얽힌 지분이 단순하게 정리되면서 그룹 지배구조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란 게 재계의 공통된 관측이다.
이 회장이 의식을 되찾지 못하면서 삼성 내부의 발걸음도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