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지 20일째 되던 지난 6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책 및 민간 연구기관장들과 긴급히 간담회를 갖고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세월호 사고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에서 긴급민생대책회의를 주재하는 모습.ⓒNews1
현 부총리는 "지난달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소비 및 관련 서비스업 활동에 다소 부정적 영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지표에서 둔화세가 약화되거나 다소 개선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소비 흐름에 어느 정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경제당국의 입장에서 당연히 주목해야할 부분이었지만 이후 세월호 관련 정부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구조대책에서 경제대책로 전환, 집중된 점은 석연치 않다.
야권 등 일각에서 정부가 재난대응 부재의 책임국면을 회피하기 위해 세월호 경제영향을 부풀려 과장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도 이때다. 정부의 사고초기대응 실패로 박근혜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국민적인 여론악화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이다.
실제로 이날 현 부총리의 발언 이후 세월호 사고가 우리 경제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정부측 주장이 반복적으로 강도를 더해서 제기됐다.
현 부총리는 다음날인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도 "전 국민적 애도분위기 속에서 세월호 사고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며 세월호가 경기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했으며, 이날 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통령주재 '긴급민생대책회의'의 계최 계획도 공개했다.
이틀 뒤 9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긴급민생대책회의'라는 제목의 민간합동 회의가 열렸고, 박 대통령도 "지난 2년간의 침체국면을 지나서 이제 조금 형편이 나아질 만한데 여기서 우리가 다시 주저앉게 된다면 서민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며 세월호의 경제파장 띄우기에 앞장섰다.
이제 경기가 좀 살아날거 같은 분위긴데 세월호 사고 여파로 다시 주저앉을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다. 같은 시기 온오프라인상에서 이른바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냐'는 논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최근 세월호 사고 여파로 소비심리 위축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번 사고로 인해 서민경기가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세월호와 경제문제를 직접 연결, 장관들에게 대책을 주문했다.
◇ 정부 '악영향' 구호에 전문가들 물음표
"세월호 사고가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혹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세월호 경제위기설로까지 확대됐다.
경제위기설 전파에는 한국은행도 일조했는데, 정부의 긴급민생대책 발표와 같은 날 취임 후 첫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세월호 사고 이후 소비심리가 위축돼 내수 회복을 제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특히 "과거 몇번의 (대형)사고에서는 여파가 한 두 달 가량 위축되는 데 그쳤지만, 이번에는 과거보다 오래 갈 것 같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라고도 했다.
한은 총재도 '일반적인 의견'이라며 세월호 여파의 장기화를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4월과 5월의 지표를 봐야 하겠지만, 세월호 사고가 내수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 사례를 볼 때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부에서 소비심리를 얘기하는데, 소비는 작년부터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소비부진은 올해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문제"라고 진단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는 정부의 단기적인 소비진작대책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세월호 사고의 경제여파를 가정한 정부의 긴급민생대책이 멋적어지는 지적이다.
권규호 KDI 연구위원은 26일 보고서에서 "최근 민간소비 부진은 기대수명의 증가라는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고 있다"며 "정부의 소비활성화 대책도 단기적인 수요진작의 관점보다는 구조적인 대책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4월 내수부진은 경기패턴..부풀려진 세월호 파장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세월호 사고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정부가 제시했던 지표들이 알고보면 정부의 논리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소비부진은 사고 여파라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4월의 내수부진은 최근의 경기흐름과 장기적인 패턴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정부가 세월호 사고로 소비가 위축됐다며 제시한 근거 중 4월 카드승인실적의 부진을 보면, 정부의 논리에 비약이 적지 않음이 확인된다.
정부가 예시한 한국여신금융협회의 올해 4월 카드승인실적(신용카드+체크카드)을 보면 세월호 사고가 있었던 지난달 카드승인실적은 47조1000억원으로 전년동월대비 2조3000억원 증가했다.
정부는 소득여건이 개선되고 4월말에 연휴도 껴있었지만 '증가폭'이 크지 않았던 점을 강조하며 4월의 카드실적을 '부진'으로 판단했다. 증가는 했지만 증가폭이 예년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여신금융협회의 카드실적을 지난 수년간의 월별 추이로 비교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뉴스토마토가 여신금융협회의 카드승인실적을 분석한 결과 2010년 이후 매년 4월의 카드승인실적은 전달보다 늘지 않고 오히려 감소해 왔다.
◇월별 카드승인실적(단위:조원)(자료=여신금융협회, 뉴스토마토)
올해 4월 카드승인실적 47조1000억원은 전달인 3월 48조5000억원보다 1조4000억원 가량 떨어진 실적인데, 이는 정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일뿐 2010년 4월, 2011년 4월, 2012년 4월, 2013년 4월 모두 같은 패턴이다.
2010년의 경우 3월 32조6000억원에서 4월 31조1000억원으로 1조 50000억원이나 감소했고, 2011년에도 3월 37조4000억원 4월 36조2000억원으로 2012년은 3월 42조9000억원에서 4월 42조8000억원으로, 2013년은 3월 45조3000억원에서 4월 44조8000억원으로 각각 전달보다 감소했다.
심지어 2003년 이후 2010년까지의 4월 카드승인실적으로 더 거슬러 가보면 4월의 카드승인실적은 2007년 단 한해(0.54% 증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월대비 마이너스 실적을 기록했다.
4월의 카드승인실적이 3월보다 감소하는 것이 계절요인으로 패턴화돼 있다고 봐야하는 셈이다.
여신금융협회의 과거연도 자료를 보더라도 4월의 카드승인실적 감소는 "전월(3월)의 계절효과로 인한 특수요인이 사라진 것과 영업일수 감소(31일→30일)에서 기인한다"고 분석돼 있다.
정부가 또다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유통업체 실적부진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세월호 사고와는 크게 연관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개한 4월 유통업체실적을 보면 대형마트의 올 4월 실적은 전년 동월대비 4.1% 하락했고, 전달보다는 14.3% 하락했다. 백화점 실적 역시 지난해 4월보다 1.4% 하락했고, 전달보다는 7.2% 하락했다.
그러나 산업부는 4월 실적에 대해 3월의 혼수특수 소멸과 채소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하락, 휴일영업일수 감소 등을 매출하락의 원인으로 꼽았다. 기획재정부가 이를 세월호 영향으로 해석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과거연도 실적과 비교해도 4월 유통업체 실적부진은 세월호 영향보다는 최근 소비부진의 패턴을 그대로 따른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기 시작한 2012년의 경우 4월 백화점 실적은 전년동월대비 -3.4%를 기록했고, 2013년 4월은 전년동월대비 -1.9%실적을 보였다. 대형마트 역시 2012년 4월에 -2.4%에 이어 2013년 4월에 -9.8%의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4월의 유통업체 실적은 오히려 최근 3개년 중 가장 좋은 편에 속한다.
◇ 긴급민생대책도 알고보면 세월호와 무관한 재탕
정부가 세월호 대책이라고 내 놓은 긴급민생대책이 과도하게 포장됐다는 점도 정부의 정책발표의 순수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다.
재정 조기집행률을 연초 계획인 55%에서 57%로 올리고, 정책금융 조기집행율을 6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은 이미 세월호 사고가 있었던 4월 16일 아침에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확정된 내용이다. 특히 조기집행에 직접 나서야 하는 일선 정부부처에는 기재부로부터 지난 3월부터 조기집행계획이 공지됐다.
이런 내용은 19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도 언급됐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5월 9일에 발표한 대책이 사실상 4월 16일 경제장관회의때 결정된 것과 다를게 없다"며 "중소기업 금융지원이나 관광업 지원, 진도와 안산 지원하는 것도 이미 재난지역으로 결정돼 있었다. 대통령의 긴급민생회의는 국면전환용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여파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됐다며 부산했던 정부가 최근 "소비심리가 회복됐다"고 발표하고 있는 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세월호 사고의 경제여파가 6월까지 갈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기획재정부는 21일 당정협의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전반적인 소비흐름을 나타내는 신용카드 사용이 세월호 사고 이후 위축된 뒤 이달 들어 다소 진정됐다"고 밝혔다.
현오석 부총리도 26일 창조경제 민관협의회에서 "세월호 사고에 따른 국민의 아픔이 지속되면서 소비관련 지표가 급속히 위축됐다가 최근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불과 2주 전에 세월호 여파로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며 대통령주재로 긴급대책회의까지 개최한 움직임에 비하면 정부가 위기라며 외친 '불'이 너무 빨리 꺼진 모양새다.
홍종학 의원은 "세월호 사고 이후 일부 지역과 산업이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통령이 회의를 갑자기 주재할정도로 변화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며 "대통령이 국면전환용으로 회의를 활용했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