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4억원짜리 시프트로 저소득층 입주 확대?

재건축 시프트 월소득 70%이하 우선공급 10%→30%
재건축 임대주택 의무비율은 완화.."경쟁 박터질 것"

입력 : 2014-06-17 오후 3:26:17
[뉴스토마토 방서후기자] 시세의 80%이하로 최장 20년간 거주할 수 있어 무주택 서민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서울시의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이 최근 공급 규칙을 개정하면서 생색내기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시는 지난달 22일 시보를 통해 '장기전세주택 공급 및 관리 규칙'을 일부 개정해 공포했다.
 
주요내용은 재건축 매입형 시프트 자격요건에 '입주자저축' 및 '입주자저축 가입기간' 가산점을 적용하고, 재건축 시프트 60㎡이하 우선공급비율을 10%에서 30%로 상향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당초 무주택기간과 서울시 거주기간으로 순위가 정해지던 재건축 시프트를 건설형 시프트와 마찬가지로 청약통장이 없으면 당첨되기 어렵게 만들었다. 또 월평균 소득 70%이하인 자에게 우선공급하는 비중을 확대해 저소득층 당첨 기회를 늘리겠다는 취지도 더했다.
 
서울시는 "주택시장 및 주택수요 변화에 대응하고 공공성 강화를 통해 저소득층의 입주기회를 확대하고 친 서민중심으로 장기전세주택 제도를 개선하고자 했다"며 이번 규칙 개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진정으로 서민을 생각한다고 볼 수 없는 생색내기 정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재건축 시프트는 택지를 조성해 자체적으로 짓는 건설형 시프트와 달리 재건축 조합과 서울시 간 매입계약이 체결된 이후 SH공사에서 공급하는 유형으로, 재건축 아파트의 용적률을 올려주는 대신 용적률 증가분의 절반을 시프트로 공급하도록 하는데 따른다.
 
때문에 주변 전세시세의 50~60% 수준인 건설형 시프트와 달리 재건축 시프트는 시세의 80% 정도로 보증금 부담이 더 크다. 실제로 지난 1월 공급된 26차 시프트 물량 중 재건축 시프트는 전용면적 59㎡기준 최고 4억원 이상의 보증금이 책정됐다.
 
물론 강남권 외 재건축 시프트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할 수 있지만, 서울 시내 재건축 사업장 대부분이 강남권에 위치한데다, 당장 오는 10월 공급되는 재건축 시프트만 하더라도 7개 단지 중 2곳을 제외하면 강남권과 목동에서 나오는 물량이다.
 
◇26차 재건축 시프트 보증금 현황 (자료=SH공사)
 
서울시가 이번 공급 규칙 개정으로 수혜를 입을 것이라 판단한 월소득 70%이하 가구의 연소득 대비 재건축 시프트 59㎡의 전셋값 배율(PIR)은 최고 9.33.
 
즉, 4인가족 기준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70%가 357만원인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이 보증금 4억875만원인 반포자이 59㎡ 재건축 시프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비를 전혀 하지 않고 저축만 해도 9년 넘게 돈을 모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해 기준 도시근로자 소득대비 아파트 전셋값 배율이 전국 3.25, 서울 5.66으로 나온 것이 비하면 훨씬 높은 수치다.
 
그러다보니 당첨이 되더라도 계약을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를대로 오른 보증금을 낮추지는 못할지라도 재계약시 매번 인상되는 부담이라도 덜하고 싶은 게 세입자들의 바람이지만, 이를 전혀 헤아리지 못한 셈이다.
 
게다가 서울시 SH공사는 재계약시 5%이상 보증금을 올리지 않겠다던 당초 계획과는 달리, 전셋값 폭등으로 주변 단지보다 시세가 절반 이하라고 판단될 때 최대 10%까지 보증금을 인상하고 있다.
 
지난 25차 공급에 당첨됐다 계약을 포기한 L씨는 "그렇게 들어가기 어렵다는 시프트에 당첨돼 좋았던 것도 잠시, 1억원이 넘는 자금을 대출받을 생각하니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포기했다"며 "저소득층의 입주 기회를 확대하고 싶다면 지나치게 높은 보증금부터 손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강남권 재건축 시프트에 살고 있는 K씨는 "서민들의 입주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던 소득제한은 끝까지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강화시키면서 전셋값은 전셋값대로 올리는 것은 모순"이라며 "전셋값은 폭등하는데 소득제한까지 엄격하게 둔다면 대출금에 이자 부담, 보증금 인상분까지 어떻게 감당하며 사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시의 이번 규칙 개정은 최근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도 상충하는 면이 있어 앞으로 서민들이 시프트에 들어가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재건축 정비계획의 용적률을 자치단체 조례에 상관 없이 법적 상한까지 높일 수 있는 조항이 마련됐다. 따라서 임대주택을 짓지 않고도 법에서 정한 한도까지 재건축 규모를 최대한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강남권에서는 서초 신동아 등 임대주택 없는 재건축 아파트 사업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SH공사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이후 올해 1월까지 서울에 공급된 재건축 시프트는 1787가구로 전체 시프트 2만5893가구의 7%를 차지한다. 만일 사업승인 이전단계의 재건축 아파트 사업장이 개정된 도정법을 따른다면 당장 서울시가 내년부터 오는 2018년까지 매년 250가구씩 공급할 계획이던 재건축 시프트 1000가구 공급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이런 시나리오대로라면 시프트 경쟁률은 더욱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전체 공급계획에서 저소득(월평균 소득 70%이하) 우선공급 비율은 느는 대신, 이들에 비해 보증금 부담이 비교적 덜한 수요자들이 입주할 수 있는 일반공급(월평균 소득 100%이하) 비율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4인가족 기준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100%이하 금액은 510만원으로, 이들 가구 소득대비 반포자이 59㎡ 보증금 배율은 6.51로 그나마 서울 PIR에 근접한 수준이다. 실제로 26차 재건축 시프트 일반공급 경쟁률은 평균 31.74대1로 저소득 우선공급 경쟁률 10.9대1의 3배 가량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시프트 청약을 앞두고 있는 J씨는 "맞벌이는 꿈도 못 꾸고 자식을 적어도 셋은 낳아야 들어갈 수 있겠다"며 "이번에 청약하면 재도전인데 입주기회가 확대된 게 아니라 오히려 바늘구멍이 된 것 같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그는 "들어가고 나서도 소득이 올라 퇴거당할까봐 노심초사 해야하는데 그럴바엔 20년이 아니라 2년씩 돌아가면서 사는 주택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전문가는 "임대주택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재건축 사업장은 물론 개발제한구역 해제지역까지 임대주택 의무비율이 완화돼 앞으로 시프트에 들어가기는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방서후 기자
방서후기자의 다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