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영택기자] 조선·해운·철강 등 국내 굴뚝산업도 원달러 환율 급락에 수익성 걱정이 심화됐다. 세계경기 침체로 장기간 업황이 바닥을 친 데다 중국발 공습으로 수급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는 환율 장벽을 헤쳐나가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대형 조선사는 환헤지 등을 통해 환율 변동에 대비해 놓고 있어 사실상 피해가 크지 않지만, 여력이 없는 중소형 조선사는 침울한 분위기다. 특히 중소형 조선사의 경우 원화 가치 상승으로 중국 및 일본과의 수주 경쟁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면서 사실상 길을 잃었다. 철강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3일 오후 3시 기준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009.9원을 기록 중이다. 원·달러 환율이 1010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8년 7월 말 이후 6년 만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원달러 환율이 900원대 진입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속도다. 환율 하락이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기업들의 움직임도 한층 분주해졌다.
◇원·달러 환율 변동추이.(자료=한국은행)
◇원·달러 환율 전망치(자료=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 )
수출전선을 주도하고 있는 전기전자 및 자동차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가 '약'이 됐다. 결제수단을 다변화하고, 해외 생산거점을 마련하는 등 오랜 준비 끝에 환율에 따른 시나리오별 대응체제를 마련했다. 상대적으로 타 업종 대비 안전망을 구축한 것.
이에 반해 조선 산업의 경우 설계, 기자재, 건조과정이 모두 국산화돼 있는 데다 수출 비중도 90% 이상으로 환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나마 대형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와 대우조선해양은 환위험 노출금액의 70% 정도, 삼성중공업은 100%를 선박 건조 계약 체결 시점에 이미 환헤지해 놓고 있어 피해가 크지 않다. 이들 대형 조선사들은 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일본·중국 조선사와의 가격 경쟁력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쟁국 조선사의 경우 중소형 컨테이너와 벌크선 건조가 대부분이지만, 국내 조선 빅3는 기술 진입 장벽이 높은 1만4000톤급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와 FPSO(부유식 원유생산 및 저장설비) 등 고부가가치 선종을 주로 건조하기 때문에 샌드위치로 전락할 가능성은 낮다는 설명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원화 강세에 따른 피해보다 환율 급변동에 신경이 쓰인다”면서 “발주사와 환헤지 계약을 스팟으로 체결하기 때문에 하루이틀 사이에 몇 십원씩 떨어지지 않는 이상 큰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또 “중국이나 일본 조선사와 주력으로 생산하는 선종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 따른 수주 피해도 그리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증권가에서는 오히려 원화 강세가 수출 경쟁력이 높은 국내 조선사의 선가 상승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원화 강세가 추세화되면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선박 발주를 서두르게 되고, 외화선가가 오르면 매매차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 변동 추이에 다른 신조선가.(자료=클락슨, 신한금융투자)
문제는 환율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형 조선사들이다. 원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직접 경쟁을 해야 하는 일본과 중국 조선사들 대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3년간 엔저로 무장한 일본 조선사들은 컨테이너를 중심으로 수주량을 급격히 키우고 있다. 지난 2012년 말 이후 엔화 가치가 20% 가까이 절하되면서 최근 엔·달러 환율은 100엔 초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전 세계 조선시장에서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조선사들의 공세가 걱정되는 이유다.
중소형 컨테이너나 벌크선을 주력 건조하고 있는 조선사들은 원화 강세로 일본 수출 길이 막힌 데다 선박 수주 계약과 단가인하까지 겹치면서 아사 직전에 놓여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조선사들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이미 전체 수주량 측면에서 한국을 따돌리고 시장 1위로 올라섰다. 기술 경쟁력이 담보되지 않는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분야에서는 국내 중소형 조선사들이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 해운과 철강사들도 원화 가치 상승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현대상선의 경우 환율 10% 하락시 2600억원 가량의 순이익 감소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진해운도 환율 5% 하락시 500억원의 순익 감소가 나타났다. 이미 유동성 악화로 재무구조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에서 환율 푹풍마저 덮칠 경우 생존 자체가 불투명할 수도 있다. 그간 생존을 위해 핵심자산 등을 매각한 상황이어서 더 이상의 버티기도 쉽지 않다는 평가다.
국내 철강사들은 원화 가치 상승으로 철광석과 유연탄 등 원료 수입 측면에서는 도움을 받지만,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익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철강사들은 원료를 수입해 완제품을 생산·수출하는 구조로 환율 변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결제 통화를 다변화시켰기 때문에 환율 하락에 따른 리스크가 과거에 비해서 현저히 줄었다”면서 “10대 산업 중 철강, 가전은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가격경쟁력 악화 등으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이어 “원화 강세 기조의 장기화와 환율 900원대 시대를 앞두고 기업 내부 효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