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효성가 장남 조현준 사장,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 삼남 조현상 부사장.(사진=효성)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끝내 최악으로 치닫게 됐다. 그룹 핵심 관계자는 “비수를 꽂았다”고까지 표현했다. 둘째의 반란을 대하는 효성그룹 표정은 침통함을 넘어 분노로까지 격화됐다.
특히 부친인 조석래 회장이 수천억원대 탈세 및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위기 국면에서, 일단락된 듯 보였던 형제 간 갈등이 검찰 고발로까지 이어지자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효성은 조석래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이 형인 조현준 사장과 동생인 조현상 부사장을 겨냥해 “100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를 수사해 달라”며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하자 “불순한 의도”라고 즉각 맞대응했다.
효성은 차남의 검찰 고발 소식이 전해진 9일 오전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불순한 의도”로 규정했다. 혐의에 대해서는 “적법한 경영 판단에 따라 이뤄진 정상적인 투자활동으로서 향후 검찰수사 과정에서 적법함이 소명될 것으로 믿는다”고 해명했다. 그룹의 공식입장 치고는 상당히 격앙된 톤이었다.
앞서 조현문 전 부사장은 지난해 소송을 통해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 ㈜신동진 등 효성그룹 계열사 4곳에 대한 회계장부 일부를 열람했고, 이를 근거로 회사 대표 최모씨를 특경가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법률가로서의 지식이 형제를 옥죄는데 쓰였다.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와 ㈜신동진은 효성그룹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계열사로,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이 각각 최대주주로 있다. 또 최모 대표이사는 조현준, 조현상 형제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두 사람은 최소한 참고인 자격으로라도 검찰 수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코너에 몰렸다.
효성은 강경대응 방침을 정하고 차남의 검찰고발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해졌다. 지난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실상 집안에서 퇴출된 터라 마땅한 채널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때 모친 등이 중재에 나서기도 했지만 조 회장의 분노가 워낙 큰 데다 첫째와 셋째 또한 냉소를 보이면서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조현문 전 부사장이 자신이 보유하던 효성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특정언론을 통해 경영선상에서 알고 있던 내용들을 하나둘 풀면서 그룹을 압박하자 조 회장이 크게 격앙했다는 게 복수의 관계자들 전언이다. 다만 이때만 하더라도 검찰의 수사선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자적 행동으로 받아들였고, 일부는 조 회장을 향한 투정과 치기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세가 같은 핏줄의 형과 동생에 대한 검찰 고발로까지 이어지자 효성 역시 정면대응 방침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조 전 부사장 사임 이후 들이닥친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검찰의 수사 배경에도 그의 제보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해묵은 얘기가 다시 불거진 이유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효성그룹 한 관계자는 “투정을 넘어섰다”며 “끝까지 가자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경영권 경쟁에서 밀려난 데 대한 억울함 아니냐는 해석에 대해서는 “스스로 링에서 내려갔지 않느냐. 지분을 다 팔고 수천억원의 자산을 갖게 된 게 누구 덕분이냐. 이렇게 등 뒤에서 칼을 꽂아서는 안 된다”고 쏘아 붙였다.
이에 대해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은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국제변호사를 지낼 정도로 형제들 가운데 능력이 가장 탁월한 것을 시기한 형과 동생이 중공업 부문이 저가 수주의 여파에 실적이 추락하자 그 책임을 모두 자신에게 떠넘겼다는 주장이다. 조 전 부사장은 서울대와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활동하다 1999년 효성에 입사해 2006년 중공업 PG장을 맡았다.
결국 형제들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그룹을 떠났고, 이 과정에서 지분까지 모두 정리하며 경영권을 포기했지만 형과 동생의 음해는 계속됐다는 게 조 전 부사장 측의 주장이다. 이로 인해 아버지와의 관계도 냉랭해졌다. 조 전 부사장은 한 언론사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오랜 기간 말할 수 없는 많은 음해와 루머에 시달려 왔다. 그중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악의적인 내용들이 있다"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각각의 주장이 엇갈린 가운데 효성그룹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결국 조 회장이 후계구도를 일찌감치 명확히 하지 못한 탓”이라고 현 사태를 풀이했다. 경영수업이란 명분으로 삼형제를 모두 경영일선에 투입한 데다, 이들 형제 간 지분율이 엇비슷해 경영권에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이는 곧 형제 간 골육상쟁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은 해당 사건을 조사부(부장 장기석)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고발 내용 및 자료에 대한 검토가 끝나는 대로 고발인 등을 불러 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