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관세화로 분열된 농업계..정부만 손 안 대고 코 푼다

입력 : 2014-07-10 오후 5:18:54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 종료를 앞둔 정부가 쌀 시장을 여는 쪽을 가닥을 정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해야 할 농민들은 별다른 행동에 나서고 있지 않다. 오히려 시장개방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갈등만 빚고 있다.
 
이런 탓에 쌀 시장개방이라는 난제를 맞닥뜨린 정부만 손 안 대고 코 풀 분위기다.
 
정부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11일 국회에서 쌀 관세화 관련 공청회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한 각계 의견을 모을 계획이지만 그간 정부가 "쌀 관세화 유예나 한시적 면제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말한 점을 미뤄보면 쌀 관세화로 무게가 쏠렸다.
 
정부와 국책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쌀 관세화를 미룰 경우 내년도 쌀 의무수입량은 80만톤까지 늘어나 국내에 안 먹는 쌀이 남아돌고 국산 쌀값만 떨어지는데, 이러느니 고관세 쌀 수입을 허용해 물량을 조절하는 게 더 낫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이런 입장은 관세화 유예나 한시적 관세화 면제, 협상을 통한 관세화 배제 등을 대안으로 주장하는 농민 측 요구를 모두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이지만, 정부가 농민 측 반대를 무릅쓰고서도 쌀 시장을 열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쌀 관세화 문제와 관련해 국내 농업계를 대변한다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각각 찬성과 반대를 외치며 이견을 보이고 있어서다.
 
영농 후계자와 전문 농업인 등으로 구성된 한농 측은 "현실적·법률적 관점에서 현재와 같은 상황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쌀 관세화에 따른 농업계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정부와 대립하기보다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는 게 더 현명하다는 것.
 
대신 한농 측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쌀을 양허제외 한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며 "현행 3%인 농업정책 금리를 1%대로 낮추고 쌀 부정유통과 혼합 쌀 유통을 금지하는 양곡관리법 개정 등 쌀 산업 인프라 확대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전농은 정부가 협상을 통해 쌀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있는데도 처음부터 시장개방을 기정사실로 하고 농민을 기만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 말로는 WTO 농업협정문에는 쌀 관세화 유예 종료 후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는 것.
 
또 정부가 지금까지 수립한 쌀 산업보호대책은 면피용이고 농민들은 이제 기대도 하지 않으니 차라리 나가서 농민을 위해 협상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쌀 관세화에 대한 입장이 다르자 한농과 전농은 공청회나 설명회 때마다 마주치며 서로 '매국노', '앞잡이' 등 비방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300만 농민의 생계가 걸린 문제에 대해 농민들끼리 이전투구를 겪고 정-농 간 대리전을 치르자 정부는 가만히 앉아서 강 건너 불구경하는 모양새다. 중요한 쟁점은 가려지고 정작 검증해야 할 문제는 검토도 못 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실제로 정부는 올해 5월까지만 해도 이 문제를 6월 중에 결정하고 9월까지 WTO에 통보한 후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한달이나 미뤘으며, 협상의 핵심인 쌀 관세율도 협상의 비밀유지를 명목으로 공개를 꺼리는 상황이다.
 
또 정부는 쌀 관세화에 대한 입장 발표 때 쌀 산업보호대책도 함께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대책 마련이 어디까지 진행됐고 실효성이 있는지도 전혀 공개·검토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식량주권과먹거리안전지키기범국민운동본부 관계자는 "정부가 쌀 관세화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도, 정보도 공개하지 않아 농민들도 혼란스럽고 갈등만 커졌다"며 "그러나 농민들끼리 다투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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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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