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혁의 스포츠에세이)'아시아의 맹주'는 이제 옛말인가

입력 : 2014-07-16 오후 1:43:20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1990년대는 한일전의 열기가 최고조였다. 월드컵 예선과 한일정기전을 보며 한국 대표팀 선수 못지않게 일본 축구 선수들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특히 일본의 스트라이커 미우라 가즈요시가 큰 관심을 받았다. 브라질 유학을 거친 그는 매번 대표팀의 골문을 위협했다. 골을 넣고 비틀거리며 춤을 추는 특유의 '가즈 댄스' 세리머니도 화제였다. 한일전이 끝난 뒤 학교 운동장에는 '일본'이라는 라이벌의 감정을 떠나 이런 행동을 따라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뜨거웠던 한일전의 열기는 두 나라의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1997년 이민성의 결승골이 터진 '도쿄 대첩'과 1998년 월드컵 직전 황선홍의 젖은 그라운드 속 '가위차기 슈팅'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치열한 라이벌전 속에 한국 대표팀은 꾸준히 월드컵 연속 진출 기록을 써갔다. 일본도 '한국을 넘어야 월드컵에 간다'는 신념을 더욱 굳건히 했다. 끝내 일본 대표팀은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을 이뤘다.
 
◇지난해 7월28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3 EAFF 동아시안컵 축구선수권대회' 한국과 일본의 경기. ⓒNews1
 
이 같은 추억의 한일전이 재개될 것이란 이야기가 지난해부터 흘러나왔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지난해 7월 일본축구협회와 한일 정기전 재개를 놓고 협의 중이라고 알렸다. 일회성이 아닌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치를 것이라 설명했다.
 
월드컵이 끝나자 한일전에 대한 관심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오는 10월이나 11월에 한 차례 맞붙을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최근 복수의 일본 언론은 오는 10월에 일본에서 한일 평가전이 열린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일본과는 평가전을 갖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구체적인 협의 과정까지 갔던 한일 정기전이 내년 아시안컵까지는 사실상 무산됐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축구협회가 일본과의 경기를 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축구 외적으로 한일 양국의 분위기가 좋지 않아 맞붙을 필요가 없다는 축구협회의 해명이 나왔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의 상황이 협회의 해명에 신뢰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축구협회를 비롯한 한국 대표팀은 표류하고 있다. 감독이 공석이지만 선임도 어렵다. 감독 선임은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장 기술위원회부터 바로 세워야 할 시점이다.
 
감독 선임이 대외적으로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마지막 단계인데 그 이전의 것들이 더 쌓여 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오른쪽 세 번째)과 임원들. ⓒNews1
 
일본은 다르다. 멕시코 대표팀을 이끈 경험이 있는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이 부임할 예정이다. 브라질월드컵에서 부진했지만 금방 추스르고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아시안컵을 한국 대표팀보다 안정적으로 치를 전망이다.
 
한국은 월드컵 8회 연속 출전을 제외하면 최근 아시아 무대에서 성적이 좋지 않다.
 
아시안컵에서 1956년과 1960년 2번의 우승 경험이 전부다. 일본(4회)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이상 3회)은 이미 한국보다 더 많이 아시안컵 우승을 맛봤다. 아시안게임은 1986년 안방에서 금메달을 딴 뒤 28년째 정상과 거리가 멀다.
 
공교롭게도 아시안게임(9월)과 아시안컵(내년 1월)이 줄줄이 열린다. 월드컵이 끝난 지금이 두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첫 출발점이다.
 
그러나 대표팀을 비롯한 축구협회는 첫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기술위원회를 다잡고 외국인 감독과 국내 감독 중 결정한 뒤 구체적인 훈련 계획과 일정을 짜야 한다. 현실적인 목표도 내걸어야 하며 그 사이 K리그 활성화도 안고 가야 하는 처지다.
 
'아시아의 맹주'라는 표현이 이제는 민망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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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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