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민식 "이순신 향한 두려움, 동료 덕에 용기로 변해"

입력 : 2014-07-28 오후 4:22:44
◇최민식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다시 이순신이 미디어를 탔다. KBS1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이후 약 10여 년 만이다. 사실 이순신 이야기는 드라마와 책 등 다양한 매체에서 소재로 다룬 탓에 대중에게 무척 익숙하다. 그래서일까. 초반에는 <최종병기 활> 김한민 감독의 신작 <명량>의 소재인 이순신에 대한 기대감은 높지 않았다.
 
기대감을 키운 것은 이순신을 연기하는 배우 최민식이다. 영화를 보기 전 '최민식인데 다르겠지'라는 생각은 영화를 본 뒤 '역시 최민식'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은 묵직했다. 감정을 대놓고 표현하는 장면이 없는 데도 최민식은 나라가 위태로운 전시를 맞은 가운데 고뇌에 휩싸인 이순신의 감정을 정확히 드러냈다.
 
'최민식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어쩌면 망작이 됐을 수도 있다'는 평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영화 내에서 최민식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지난 24일 서울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최민식을 만났다. 출중한 연기력과 이순신이라는 굵직한 배역 때문에 마음 속에 무게감 있는 이미지가 그려졌지만, 실제 모습은 (악한 부분을 뺀다는 전제 하에) <범죄와의 전쟁>의 최익현과 가까웠다. 솔직하고 소탈했다. 특히 이순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말을 끊기 어려울 정도로 깊게 빠져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에 광화문에 못 가겠어요. 이순신 장군님이 왜 이렇게밖에 연기를 못했냐고 '이노무시키' 하실 것 같아요."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스스로에게 냉정한 눈길을 거두지 않는 배우, 3년여 간 난중일기를 읽고 또 읽으며 이순신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끊임없이 애썼던 배우. 최민식의 속마음을 잠시 들여다봤다.
 
◇최민식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묵직한 <명량>..차라리 3시간 넘는 영화로 만들었다면"
 
최민식은 <명량>을 두 번 봤다. 언론시사회는 물론이고 CG가 빠진 상태의 편집본을 영화 관계자들이 먼저 확인하는 기술시사회에도 참석했다. 그만큼 이번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다.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유달리 이 작품은 징글징글하다"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최민식은 "29일에 '전야 시사회'가 있다는데 그 때 한 번 더 보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영화의 스포트라이트는 최민식에게 쏠린다. 정유재란 당시 명량대첩을 배경으로 그린 영화고 이순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민식은 영화가 계속 아쉽다. 특히 영화의 길이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한참 동안 토로했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끼리 '마의 두 시간'이라고도 하는데, 이걸 넘으면 너무 길지 않냐고들 하죠. 사실 그런 생각이 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만드는 사람들이 더 여유를 가질 때가 됐는데. 외국만 봐도 공연이나 영화 보다가 잠깐 나가서 차 마시고 얘기하다가 다시 영화 보고 그래요. 4시간짜리 영화들도 많아요. 우리나라는 너무 엔터테인먼트적인 기능만 생각해서 영화가 빠른 걸 너무 추구해요. 물론 모바일 세대다 보니 느리면 지루해하긴 하는데, 그러니까 영화가 대부분 빠르려고만 해요. 이런 묵직함이 있는 영화는 차라리 3시간 넘는 작품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그의 속상함에는 이순신이 느꼈던 응축된 번뇌를 다 내보이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후배 연기자들의 열연이 편집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순신이 경거망동한 사람이 아니에요. 말 한마디를 해도 강하고 힘 있게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에요. 엄청난 부담과 무게를 지닌 사람이라고요. 특히 영화 중반에 나와 함께 싸웠던 동료에게 벌을 내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다음에 슬퍼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화를 꾹꾹 눌러담는 장면. 그게 편집됐더라고요. 또 영화에서 박보검이라는 후배가 나오는데 나와 함께 싸운 장수의 아들 역이에요. 내가 그 장수의 옷을 주면서 대사를 하는데, 그 애가 '꺽꺽' 대면서 오열을 해요. 그것도 편집됐어. 그 애 연기가 너무 아까워서 아쉽더라고. 진짜 잘했어."
 
상업영화의 논리에서 벗어나 장군부터 민초까지 모두 다 보여주고 싶다며 DVD라도 4시간짜리로 만들었으면 한다는 최민식. 후배 생각하는 마음이 흡사 이순신을 떠올리게 했다면 지나친 과찬일까.
 
◇최민식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게 한 고경표와 동료들"
 
이번 영화에는 내용 전반을 관통하는 강렬한 대사가 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라는 이순신의 대사다. 두려움이 가득한 장수와 병사, 민초들은 이순신의 말을 통해 용기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원탑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짊어진 최민식은 어디서 힘을 얻었을까. 최민식은 "동료들 덕분에 두려움이 용기로 바뀔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연설을 하는 장면이었어요. 카메라는 나를 잡고 있고 병사들은 뒷모습만 잡히는 장면인데 엄청 추웠고, 힘들었어요. 추위와의 전쟁이었어요. 서 있기도 힘들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표정들이 하나 같이 다 비장해. 사실 선배에 대한 예의로 그래줬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상황이 아니었어요. 잠도 못자고 피곤하고 힘들고 춥고. 그냥 서서 폼만 잡고 눈을 감고 있어도 누구하나 뭐라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그 비장한 표정들이 아직도 생생해요."
 
특히 기억에 남는 후배로는 고경표를 꼽았다. 사실 이 영화의 최대 피해자로도 볼 수 있는 배우다. 나름 이름을 알린 배우인데, 영화 내에서 몇 컷 잡히지 않는다. 대사도 물론 없다. 그런 상황임에도 최선을 다하는 고경표의 연기가 최민식을 감동시켰다.
 
"사실 자기한테 카메라가 왔을 때만 울어도 돼요. 그런데 카메라가 나를 잡고 있는데도 걔(고경표)는 눈물을 '촤'하고 흘리는 거야. 굳이 그럴 필요 없거든요. 아무리 후배고 그래도 정말 감동이었어요. 표정을 보면 알아요. 모두가 몰입이 돼 있었다는 걸."
 
베테랑 최민식에게도 <명량>은 힘들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이순신을 연기해야한다는 중압감부터 추위 속에서 드러내야 했던 백병전을 비롯한 몸을 써야 하는 액션신도 그에게는 고된 시간이었다. 많이 힘들어도 동료들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는 게 최민식의 설명이다.
  
<명량>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3부작을 준비 중이다. 시나리오가 꽤 나왔고, 속편이 더 재밌다는 말도 들린다. 김 감독이 또 한 번 최민식과의 작업을 꿈꾸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영화가 힘들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또 하실 거예요?"라고 최민식에게 물어보니, "왜 그래. 응원할거야. 김한민 화이팅!"이라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나 말고도 잘 할 사람, 아주 많아. 김명민이 시키면 아주 잘 할 거야"라면서 큰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어쩌랴. 최민식이 연기한 <명량>의 이순신은 이미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됐다. 당당하고 믿음직하며 겸손한 리더를 경험한 관객들은 이제 최민식의 변심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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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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