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경제자유구역에서 성공 사례가 나온다면 입주하겠다는 기업이 많아질 것이고, 경자구역 내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국내기업과 외국기업에 동일한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 - 이승철 전국경제인엽합회 상근부회장
지난 2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모여 제조업 혁신방안을 논의한 자리에서, 업계는 정부에 경자구역 활성화를 주문했다. 기업 유치를 위한 각종 인프라를 조성한 경자구역이 살아나야 부동산 경기와 내수, 지역경제까지 산다는 것이다.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승철 전국경제연합회 상근부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민·관 합동 제조업혁신위원회' 출범식이 열렸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그러나 업계의 바람과 달리 지금 경자구역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고민거리가 됐다. 경자구역 개발이 제도 도입 10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한데다 막상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니 국토균형발전 명분이 퇴색되고 지금까지 쏟은 예산 문제도 만만치 않아서다.
30일 산업부에 따르면 정부는 8월4일까지 경자구역별 개발계획을 검토해 계획이 없는 경자구역을 해제할 방침인데, 지금까지 사업현황으로 보면 상당한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경자구역은 인천과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동해안권, 충북 등으로, 경자구역 개발을 맡은 각 경자구역청에 따르면 지난해 경자구역에 지정된 동해안권과 충북을 뺀 6개 지역의 90개 개발지구 중 개발계획이 없는 곳은 40곳이나 됐다.
정부의 의도대로 경자구역 구조조정을 실시할 경우 최대 40곳에서 정리가 가능하다. 특히 황해와 동해안권 경자구역은 개발률이 전무한데, 황해는 4개 개발지구 중 당진 송악지구와 아신 인주지구에서 사업자를 못 찾아 8월5일자로 경자구역에서 자동 해제된다.
문제는 정부가 국토균형발전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각 경자구역별로 쏟은 돈이 총 140조에 육박하기 때문에 법률에 근거해 경자구역 해제를 진행하기도 애매하다는 점. 실적이 없다고 경자구역을 조정하자니 예산낭비 지적을 피할 길 없는 셈이다.
정부는 경자구역 구조조정이라는 말까지 피하고 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경자구역 정리는 정부가 몇번 언급했고 개발이 더디면 정리하는 게 당연하다"며 "이는 '경자구역 지정·운영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한 것으로 의도적인 구조조정은 아니다"고 말했다.
◇인천 경제자유구역 개발계획도(사진=인천 경제자유구역청)
지자체 역시 경자구역 사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며 경자구역을 유치했는데 사업 실적은 적고 난개발과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산더미 부채만 생겼다.
인천시는 '단군 이래 최대의 도시개발'이라며 317조원이 투입되는 에잇시티 사업(용유·무의도 복합레저관광단지)을 추진했지만 사업이 무산되면서 영종지구가 경자구역에서 해제될 운명에 처했다. 이러는 동안 인천시 부채는 7조8000억원으로 불어 부채율만 350%다.
대구·경북 경자구역은 구미디지털산업지구 조성을 계획했으나 7년 넘게 제자리걸음 중이고, 부산·진해 경자구역에서 추진한 40만㎾급 태양광 단지 조성사업도 끝내 무산됐다.
일부 내륙권 경자구역은 신도시 조성 기대감에 땅값까지 치솟았다. 경자구역이 해제되면 수십조의 매몰비용이 생기고 지역민의 반발까지 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 경자구역청 관계자는 "경자구역은 정부나 공기업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민간 사업자를 유치해 사업을 벌이는 방식"이라며 "경기가 불황이라서 정부와 지자체가 마련한 인프라와 지원이 기업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개발사업도 시작할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연구원 관계자는 "경자구역은 외국기업을 유치하고 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 뿐 아니라 국토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업"이라며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가 치적쌓기용 사업계획을 남발한 탓에 국책사업이 되돌리기 어려운 수순이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