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LG전자(066570)의 위장도급 및 불법하청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 기사의 극단적 자살까지 낳았던 삼성전자서비스 사태와 문제의 본질이 다르지 않아 시급한 시정이 촉구된다.
각각의 서비스 지점은 LG전자 서비스 또는 LG 베스트샵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은 별도의 중소기업에 고용된 비정규직 수리기사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LG전자는 AS 기사의 고용, 교육, 업무평가 등 관리감독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LG전자 서현동 서비스센터. 입구와 현판 모두 LG전자 로고가 붙어있지만 정식 사명은 '(주)분당서비스센터'다. 분류상 일반 중소기업에 속한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분당서비스센터'라는 간판은 어디에도 없고, LG 로고만 가득하다. 형식적으로만 중소기업이지, LG전자 서비스 직영점으로 위장된 노무대행 업체다.
전국의 다른 LG 서비스센터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심지어 갓 입사한 일부 서비스센터 직원들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기업이 협력업체가 아니라 LG전자 직영 서비스센터로 알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LG전자 서비스를 담당하는 협력업체의 한 직원은 "그동안 일하면서 LG 업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본사 소속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통상 협력업체에 근무하는 AS 기사들은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3~6개월간 LG전자 본사 혹은 LG전자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은 뒤 각 업체로 파견된다. 협력업체는 독립적인 기업이라기보다는 본사 지침에 따라 운영되는 하청업체이기 때문에 자체적인 전산 시스템이 전무하다. 때문에 모든 비정규직 직원들도 LG의 전산 시스템을 사용한다.
뿐만 아니다. LG전자는 서비스센터 직원들의 고용과 업무평가, 재교육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 LG전자 서비스 협력업체에 근무하기 위해서는 경력 유무와 관계없이 LG전자 평택, 창원 사업장에서 일정 기간의 인증 교육을 수료해야만 입사가 가능하다. 입사 이후에도 수당 책정을 위해 주기적으로 LG전자가 출제하는 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LG 모바일 서비스센터.(사진=뉴스토마토)
LG전자는 해당 시험을 통해 각 기사들의 AS 능력을 평가해 협력업체 혹은 콜센터에 업무 배정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법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들은 통상 원청업체가 업무 제한과 업무 배분에 관여하게 될 경우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인 도급 형식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쉽게 말해 '도급 계약'이 아니라 실질적 '근로 계약'으로 평가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서비스와 마찬가지로 LG전자 기사들 또한 대부분 기본급 없이 수당제로 일하고 있다. 협력업체에 근무 중인 한 기사는 "기사들의 기술 레벨에 따라 차등적으로 수당이 지급되는데, 기술 레벨은 LG전자가 내는 시험에 응시해서 일정 레벨이 돼야 수당이 나온다"며 "지난해까지는 수당 이외에 따로 받는 지원금이 전무했지만 삼성전자서비스 사태 이후 성수기와 비수기에 나오는 소정의 지원금이 생겼다"고 말했다.
입사 이후에도 협력업체 기사들은 지속적인 LG전자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일례로 고객 불만이 접수된 기사의 경우 본사에서 브이오씨(VOC) 클리닉이라는 이름의 집체교육을 받아야 한다. LG전자는 '아카데미'라는 형태의 조직을 별도로 운영하며 기사들의 업무 교육과 재교육 등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 이 또한 협력업체가 아니라 LG전자가 직접 기사 개개인 업무에 관여하고 있다는 증거다.
최진수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무사는 "LG전자 서비스라는 이름을 달고 일을 하는데 사실은 이름이 다른 중소기업에 소속돼 있는 상황에서 일을 하기 위해 LG전자 본사에서 인증 교육을 진행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사에 LG전자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이는 위장도급의 여러 정황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위장도급의 문제는 사실상 업무가 이뤄지는 시스템에 접근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업무 시스템이 자체에서 제작한 업무 프로그램이 아니라 본사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쓴다면 직접 고용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불법하청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 말했다.
LG전자가 서비스 기사들의 업무 방식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정황은 이외에도 상당수다. 협력업체 직원은 "LG전자 서비스 직원이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말다툼이 벌어지자 LG전자 본사 측에서 대외 이미지가 손상된다며, 근무 중에서 사고가 날 경우 기사 명함을 주지 말고 LG 로고가 새겨진 점퍼도 벗으라는 공문이 내려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류하경 변호사는 "법적으로 도급이라는 것은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이다. 건설업종을 예로 들어도 하청업체에게 설계도 정도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업무 방침을 지시할 수는 없다"며 "도급 계약인 것처럼 해놓고 사실은 노무대행 업체에 불과한 협력업체를 두면서 모든 이득은 LG전자와 협력업체 사장이 챙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이 같은 공방을 벌일 때 기업 측에서는 전자제품의 특성상 본사에서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라고 항변하며 '어쩔 수 없다'는 식의 결론을 낸다"며 "그렇기 때문에 서비스센터 법인에서 직접 고용을 하도록 하고 도급비 명목으로 협력사 사장과 LG전자가 챙기고 있는 불로소득을 분배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LG전자 측은 "모든 서비스는 도급업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인사권을 남용하는 등 직접 고용 형태처럼 운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항변했다.
다만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기사들의 서비스 수준을 본사 차원에서 판단할 수 있지 않느냐"며 "회사 대표와 서비스 기사의 기술력, 고객 만족도 등 세 가지 부문을 통해 레벨을 판단하고, 이를 통해 우수 도급업체에게는 장려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 서비스센터.(사진=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