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위반 글, 삭제 대신 벌금내면 끝?

방통위 삭제명령 불복..벌금 300만원
당사자가 안지우면 강제할 방법 없어

입력 : 2014-08-03 오전 5:00:00
[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2012년 1월 한 인터넷 사이트에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글이 올라왔다. 주한미군 철수 주장과 김정일을 찬양·미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총 3건이었다.
 
경찰은 1년이 지나 이 글을 발견했지만 글쓴이가 누군지 알 수 없어 처벌할 길이 없었다. 가만히 둘 수는 없으니, 지우기라도 해야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경찰의 요청을 받고 사이트 관리자 황모씨(34)에게 해당 글을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황씨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며 버텼다. 방통위는 수사기관에 황씨를 고발했다. 황씨는 지난 3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정보통신망법)이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아니었다. 황씨는 해당 글을 삭제하지 않았을 뿐이지, 직접 작성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정에 선 황씨는 글을 함부로 삭제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글쓴이가 누군지도 모르는 터에 그 사람이 이적성을 갖고 글을 썼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계속 글을 내리라고 강요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정보통신망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단독 임창현 판사는 정보통신망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황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문제가 된 게시물이 북한의 주장을 수용해 국내 추종세력들에게 대중투쟁을 선전·선동하는 등 공격적인 내용이며, 북한의 김정일을 미화·찬양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과 표현에 비춰 작성자의 이적목적을 인정하기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황씨의 위헌법률심판제청도 기각했다.
 
황씨가 처벌을 받았다고 해서 문제된 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황씨 스스로 삭제하지 않는 이상 글은 계속 존재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방통위는 사이트 관리자에게 특정 글을 삭제할 것을 명할 수 있으나 임의로 어떤 글을 삭제할 권한은 없다.
 
황씨가 다시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헌법은 우리 국민이 같은 내용으로 다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일사부재리 원칙이다.
 
방통위가 2차 삭제명령을 내리고, 황씨가 다시 거부하면 추가 고발해 처벌할 수는 있다.
 
다만 앞선 판결이 확정되고, 2차 시정명령을 내리고, 다시 고발해서, 수사해 기소하고, 재판을 받은 뒤, 이 판결이 확정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동안 글은 그대로 살아 있게 된다.
 
방통위 관계자는 "피고인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도 문제가 된 글을 삭제하지 않을 때도 있다"며 "이런 경우 사실상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가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글을 내려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국가를 명예훼손의 당사자로 볼 수 없는 마당에, 단순히 국보법 위반 글을 명예훼손으로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게시자를 찾아내 처벌하면 될 일이지만 쉽지 않다. 황씨가 운영하는 사이트는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는 구조다. 글쓴이의 흔적은 거의 남지 않는다.
 
익명의 부장검사는 "회원가입을 한 사람도 현장에서 체포하지 않으면 잡기 어려운데 어떻게 잡겠느냐"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끝내 글쓴이를 찾지 못했다. 하다 못해 글이라도 지워야 했고, 그러다 보니 황씨를 재판에 넘긴 것이다.
 
현행법을 위반한 글이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것을 막을 뾰족한 대책이 없어 문제다. 황씨의 사이트에 해당 글 3건이 올라온 때는 2012년 1월이다. 이 글은 사이트에 아직도 실려 있다.
 
황씨는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한 상태다.
 
◇서울중앙지법(사진=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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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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