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불공정)③불면 벌금 깎아주는 '리니언시제'의 허와 실

입력 : 2014-08-13 오후 2:16:26
[뉴스토마토 방글아기자]최근 호남고속철 입찰담합 사건에 건설업계 역대 최고 과징금(4355억원)이 부과됐다. 어마어마한 액수에 우선 관심이 쏠렸지만 28개나 되는 대·중소 건설사들이 함께 적발된 경위에도 이목이 집중됐다. 건설업계가 수년째 이어온 견고한 '카르텔'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어떻게 깼느냐는 것이다.
 
공정위는 심사관들의 심문기술을 높이 사고 있지만, 안팎에서는 '리니언시' 제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담합행위는 누군가 '불지' 않는 한 적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리니언시는 담합 업체가 행위사실을 자진신고하면 행위에 따른 제재를 덜어주는 제도로, 담합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턴키·대안 입찰제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특히 최저가입찰제에서의 담합은 명시적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다른 불공정거래 사건들과 달리 공정위가 피심인에 혐의를 추궁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서면 증거가 거의 없다"며 "호남고속철 건 제재는 담당 심사관들이 '고도의 심리전'을 통해 담합 건설사들 간 심리적 결속을 깨뜨려 가능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심사관들은 담합에 가담한 건설사 일부의 진술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 보고서가 다른 가담자에 혐의를 스스로 인정하도록 몰아갔다. 심판정에서 적발된 업체 대부분은 담합사실을 그대로 시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담합 적발에서 위법 업체의 '조사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과징금 감경률이 너무 높다는 등의 이유로 리니언시제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이유기도 하다. 자발적 신고를 끌어낼 '당근책'으로서 리니언시제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관건은 리니언시제를 얼마나 '공정하게' 설계·운용하느냐는 것이다. 담합 시인의 기폭제로 활용하되, 범죄 자체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현행 과징금 고시는 조사단계부터 위원회의 심리종결 때까지 피심인의 '협력' 수준별로 과징금을 감면해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과징금 2차 조정(가중 및 감경) 과정에 적용되는 '일반원칙'에 따라서다. 원칙은 다만 "가중·감경의 결과가 1차 조정된 기준의 100분의 50 범위 내여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행위 사실을 인정하면서 위법성 판단에 도움이 되는 자료나 진술을 제공한 업체는 최대 30%까지 과징금을 깎아준다. 조사단계 이후라도 행위사실을 새로 인정하면서 추가적 자료나 진술을 제공하면 최대 15%까지 감면해준다.
 
◇공정거래위원회 개정 과징금 고시(2014.5.30)에서 일부 발췌
 
그런데 공정위의 제재대상 행위유형 6가지중 부당 공동행위(담합)에서만큼은 조사협력의 정도가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는 자진신고에 '100% 감경'이 허용된다. 공정위는 과징금 산정기준을 행위유형별로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데, 담합행위가 적용을 받는 반독점법(제19조)은리니언시 규정을 따로 둬 첫 번째 자진신고자에는 과징금을 아예 면제, 두 번째 신고자까지 50%나 깎아줄 수 있도록 했기 때문. 리니언시제는 원칙을 깬 예외인 셈이다.
 
리니언시제가 '역차별적 면죄부'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이는 또한 위법업체 조사협력의 편익'에 견줘 높은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
 
이에 지난 6월30일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은 자진신고기간을 공정위의 조사 전과 후로 구분해 조사 후에 대해서는 그 비율을 50%대로 줄이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이 역시 충분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선 조사 전과 후 모두에 대한 감경률을 내려야 하고, 신고자의 업계 지위(시장점유율)에도 연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호남고속철 건에서 최초 자진신고자는 삼성물산으로 전해진다. 이번 담합을 주동한 건설 빅6중 하나다. 업계는 삼성에 이익은 이익대로 챙기고 리니언시를 악용해 '면죄부'까지 받았다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들러리 역할을 주로 맡은 중·소 규모의 업체들의 반발이 심하다. 삼성 등과 같은 대기업일수록 공정위의 조사착수와 같은 고급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최초 신고를 '점하기도' 쉽기 때문.
 
건설업계 관계자는 "담합을 주동하고 '큰 건'까지 따내 더 많은 이익을 누린 대기업이 재빨리 입수한 정보로 리니언시 혜택을 받고 들러리만 서고 이익은 적게 누린 중소 건설사가 더 많은 과징금을 물게 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잇따른 담합 제재 실적을 자찬하는 한편 관련 제도를 손 볼 의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여태까지 건설사들이 이렇게 담합사실을 전폭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카르텔조사국의 실력을 높이 산다"며 "제재를 발표하는 이 순간 이후 건설업계가 공정위 때문에서라도 담합을 위해 접촉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28개사가 똘똘 뭉쳐 담합을 벌이던 그동안의 고질적 관행을 이어가기는 이제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건에서 감경률을 문제 삼는 것은 제도개선이 이뤄진 다음에 판단할 문제"라며 "감경률은 정책방향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현행 법령체제를 따른 판단으로, 부과된 과징금 액수를 따지는 것은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그러나 한 건의 집행만으로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다. 리니언시제의 실효성만큼 중요한 것이 리니언시제의 절차상 공정성이다. 이를 위해 원칙을 과하게 넘어서는 수준의 감경률에 대해서는 하향조정하는 한편, 제도 수혜자의 시장지배력을 감안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의 세밀한 정비가 시급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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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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