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유럽 경제가 일본식 잃어버린 10년을 겪을 수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유로존의 저물가와 저성장, 산적한 부채 문제 등을 지목하면서 역내에 경기침체 우려감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우선 물가를 보면 유로존 경제가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지난 7월 기준으로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년 반 만에 최저치인 0.4%다. 이는 목표치인 2.0%에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유로존의 8월 CPI 상승률은 0.3%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20개국(G20)의 물가상승률이 2.9%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로존의 물가는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
켄 와트렛 BNP 파리바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이 제로수준에 근접했다"며 "저물가가 이어지리란 우려가 확산되면 경제는 심각하게 악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가 상승률이 저조한 이유는 가계소비와 기업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들은 고용불안과 실업으로 돈을 쓸 여유가 없다. 유로존의 실업률은 1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인 7.4%를 훌쩍 웃돈다.
기업들은 경제 상황을 비관하고 있다. 민간 시장조사기관 마르키트는 유로존의 지난 8월 복합 PMI가 52.8로 전달의 53.8을 밑돌았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개월래 최저치다.
◇유로존 물가상승률 추이 2011년~2014년 7월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유럽 주요국 경기둔화 '부각'..ECB에 거는 기대 '급증'
유럽 경제 성장의 동력이자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맥빠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견고한 성장세를 구가하던 독일은 지난 2분기 들어 마이너스(-) 0.2%란 형편없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2년 이후 최악의 수치다.
유럽 경제 2, 3위 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프랑스는 지난 2분기까지 두 번 연속으로 성장률 '제로'를 기록했다. 이탈리아는 2분기 동안 0.2% 후퇴했다.
저성장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정부 재정을 동원하는 방법이 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독일이 예산삭감과 부채감축 기조를 여전히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달 초 "독일이 예전에 증명했듯 다른 회원국 들도 예산삭감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유럽 당국자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의 정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독일의 반대로 긴축기조를 바꿀 수 없다면 통화정책이라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ECB는 당장 미국식 양적완화와 같은 경기 부양책을 추가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지난 6월 TLTRO(목적 장기대출프로그램)을 도입한 ECB는 이 정책이 효과를 거둘 때까지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ECB 정책위원들은 "올해 안에 양적완화를 시행할 생각이 없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설령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돼 양적완화가 시작돼도 그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기업 컨설팅 전문가 존 루이스는 "ECB가 양적완화를 단행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라며 "그러나 저성장과 고물가에 대한 우려로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유럽은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할 것"이라며 "유럽 국가들은 불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