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방글아기자] 작가들에 현저히 불리하게 작용하던 출판업계의 이른바 '노예계약서'가 사라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출판업계 약관 실태조사를 추진해 20개 대형 출판사가 사용해온 저작권 양도계약서와 출판권 설정계약서에 나타난 불공정 약관조항을 시정조치했다고 28일 밝혔다.
4400억원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고도 매절계약으로 1850만원밖에 보상받지 못한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가 대표적인 피해사례다.
매절계약은 출판사가 작가에게 계약체결 시 일정액만 지불하고 관련 장래수익 모두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한 불공정 거래형태다. 이 계약대로라면 작가는 본인의 창작물이 다른 형태로 활용돼 막대한 수익을 창출해내더라도 출판사로부터 추가적인 대가를 받을 수 없다.
황원철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2차적 컨텐츠 창작권까지 매절토록 하는 이같은 출판계 관행은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떨어뜨려 문화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며 "창조경제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번 실태조사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출판업계의 4대 불공정 약관조항에 메스를 댔다.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포함한 저작권 일체를 양도하는 조항 ▲저작물의 2차적 사용에 대한 처리를 전부 위임하도록 하는 조항 ▲저작권 양도시 출판권자 등에게 동의를 얻도록 한 조항 ▲묵시의 자동갱신으로 지나치게 장기의 계약기간을 설정한 조항 등이다.
우선 저작권 일체(복제권·공연권·공중송신권·배포권·전시권·대여권·2차적 저작물 작성권)를 출판사에 한꺼번에 양도토록 하던 조항을 저작자가 양도할 권리를 직접 선택하게 했다. 2차적 저작물의 작성권은 별도의 특약을 맺어서만 양도할 수 있도록 시정했다.
또 작품의 2차적 활용·처리 관련 권한을 출판사에 전부 위임토록 하던 조항은 2차적 사용에 대한 권리가 작가에게 있음을 명시하되, 저작자가 위임여부 등을 개별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바꿨다.
작가가 저작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출판사 등에 양도할 때 선계약을 체결한 출판사의 동의를 얻도록 한 조항은 저작자가 자유롭게 양도할 수 있도록 하되 해당 출판사에게 양도 사실을 통보하도록 수정했다.
작가가 해지의사를 통보하지 않는 한 5~7년 간 출판권이 자동갱신 되도록 하던 조항은 작가와 출판사가 상호 합의한 기간 내 1번에 한해 갱신할 수 있도록 하거나, 자동갱신 되도록 설정한 경우 그 기간을 1년 정도 선에서 짧게 하도록 했다.
이번에 불공정약관 시정조치를 받은 출판사는 ▲웅진씽크빅 ▲교원 ▲삼성출판사 ▲예림당 ▲한국몬테소리 ▲에듀챌린지 ▲도서출판 한국헤르만헤세 ▲프뢰벨미디어 ▲아가월드 ▲프뢰벨하우스 서울문화사 ▲시공사 ▲김영사 ▲문학동네 ▲창비 ▲북이십일 ▲다산북스 ▲비룡소 ▲열린책들 ▲사계절출판사 등 20개사다.
대표 피해사례로 나타난 구름빵의 출판사 '한솔수북'은 조사와 시정대상에서 제외됐다.
황 과장은 "조사대상을 선정할 때 백희나 작가의 사례를 보고 아동문학을 많이 출판하는 전집과 단행본 분야 출판사를 살펴봤는데, 구름빵 출판사는 학습지 주력회사로 등록돼 있어 조사대상에 오르지 않았다"며 "현재 국세청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매출을 내고 있는 출판사가 4000여개에 달해 불가피하게 일부만 조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지식재산권 분야 전반에 걸쳐 불공정약관을 시정해 나갈 계획이다. 황 과장은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매절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무명으로 데뷔했음에도) 1조원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며 "앞으로 지재권 전반에 걸쳐 불합리한 관행을 차차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