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논란부터 CJ 갈등까지..장막 걷어내는 이재용

입력 : 2014-08-29 오후 5: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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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범삼성가의 탄원서가 법원에 제출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행보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삼성은 표면적으로 이 회장의 공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차분한 행보를 이어왔다. 계열사별, 또 각 사업부문별 책임경영 체제와 함께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내면을 보면 삼성의 행보는 이 회장의 최근 지론인 마하경영을 방불케 할 정도의 속도감을 냈다. 전자 중심의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함께 향후 이재용 체제를 위한 초석 마련에 돌입했다. SDS에 이어 지주사 격인 에버랜드가 상장 추진을 전격 발표했으며, 전자를 정점으로 한 계열사 헤쳐모여도 단행됐다. 
 
뿐만 아니다. 사회문제로 비화되며 비난 여론의 중심에 섰던 백혈병 문제와 함께 삼성전자서비스 사태 등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이며 문제 해결에 나섰다. 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했던 CJ와의 관계 복원에도 나섰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이재용 체제 출범 이전 장애물을 걷기 위함으로 보고 있다.  
 
삼성그룹의 대들보인 삼성전자는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나흘 만에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등의 진단을 받고 숨진 근로자와 그 가족들에게 공식사과와 함께 보상을 약속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반대편에 서있던 심상정 의원과 반올림조차 귀를 의심할 정도의 반전이었다.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는 2007년 반도체 라인에서 일했던 23세의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숨지면서 불거졌다. 피해자 가족과 함께 구성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가 삼성의 사과 요구와 함께 산업재해를 신청했으나 삼성은 발병과 작업환경과의 인과관계를 부인했다.
 
2011년 1심 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2명에 대한 산업재해를 인정했지만 삼성의 반박은 계속됐다. 급기야 황씨 가족을 그린 '또 하나의 가족'이 스크린에 올랐고, 이는 여론을 더욱 냉담하게 등 돌리게 만들었다. 세계 1등 기업을 내세우는 삼성이 근로자의 안전과 인권을 무시한다는 비판은 삼성을 곤혹케 하기에 충분했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자가 나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약속을 하면서 양측의 협상 테이블은 마련됐고, 이 과정에서 지난 21일 2심 법원마저 산재를 인정하면서 힘의 무게는 피해자 측으로 실렸다. 물론 양측의 협상은 여전히 진행 중인 미결과제지만 삼성이 먼저 나서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주를 이룬다.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는 총 233명이며, 이중 70명이 사망했다.
 
백혈병 논란과 함께 삼성전자를 괴롭히던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 논란도 협력사 노사의 단체협약 협상 타결로 길을 찾았다. 표면적으로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내부의 문제지만, 배경에는 문제 해결 의지를 갖고 이를 주도하던 삼성전자가 있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이는 무노조 방침을 고수하고 있던 삼성에 대전환의 계기로도 읽힌다.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은 혹독한 근무환경에 대한 개선과 함께 위장도급 해결을 요구하며 금속노조 산하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출범시켰다. 이 과정에서 2명의 서비스 기사가 자살을 택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지만 협상 타결에 따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40일 넘게 진행해 오던 농성도 사라졌다. 이 또한 법적 다툼의 여지는 충분했지만 삼성의 의지가 투영되면서 해결의 단초를 찾았다.
 
백혈병 논란과 삼성전자서비스 사태가 경영상의 부담이었다면 CJ와의 갈등은 가족문제였다. 선대 회장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유산을 둘러싸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간 진행된 소송전은 사회적 관심 속에 숱한 파문을 낳았다. 비록 1심과 2심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완벽하게 이맹희 전 회장의 소송을 제압했지만 상처는 동생이자 강자인 이건희 회장이 더 크게 입었다. 
 
여과되지 않은 해묵은 감정적 발언들이 그대로 언론에 노출되면서 이건희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유럽 출장길에 올라야만 했다. 이는 이맹희 전 회장의 아들이 총수로 있는 CJ그룹과의 전면전을 야기했다. 양사의 협력적 관계가 단절됨은 물론 사사건건 날선 공방을 주고받는 신경전이 재개됐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미행건과 함께 선대회장 추도식 정문사용 여부를 놓고도 불이 붙었다.
 
그러나 이번 탄원서 제출로 양측은 화해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이재용 부회장과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까지 탄원서에 서명한 것을 놓고 복선의 의미를 풀이하는 분석도 잇달았다. 무엇보다 삼성가의 장손이자 사촌형인 이재현 회장을 위하는 마음은 천륜을 저버리지 않는 이재용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동시에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도 빨라졌다. 이재용 체제 출범을 위한 초석 다지기다. 삼성SDS의 삼성SNS 합병, 삼성SDS와 에버랜드 상장 발표에 이어 이달 들어 14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액면가 5000원의 제일모직(구 에버랜드) 주식을 100원으로 분할해 최대 주주인 이 부회장의 지분 안정화를 도모했다. 막대한 시세차익도 챙겼다. 사업조정과 지배구조의 정점에 이 부회장이 있는 셈이다.
 
이건희 회장이 아직 의식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하는 사이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에 드리웠던 장막들을 하나둘 제거하고 있다. 물론 스마트폰 이후의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는 점은 그의 숱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뒤따라 붙는 경영능력에 대한 의문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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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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