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영기자] 다국적제약사를 겨냥한 '사용량-약가연동제' 정책이 되레 국내 제약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제도는 약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약가를 인하해야 하는 정책으로,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는 제약사들에게는 치명타로 작용하고 있다. 사용량이 늘어 약값이 내려간 국산 신약들은 떨어진 가격을 기준으로 해외업체와 수출가격을 협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사용량 약가 연동제란 보험재정 절감 효과를 위해 보험 등재 당시 약가 협상 과정에서 예상한 사용량보다 실제 사용량이 많거나, 전년 대비 청구량이 일정 비중 이상 증가하면 보험 약가를 낮춰야 하는 제도다.
지난해까지는 전년 대비 청구액이 60% 이상 증가할 경우 협상 대상이 됐지만, 올해부터는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하고, 절대금액이 50억원 이상 늘어나면 협상 대상이 되도록 제도가 강화됐다.
이 제도는 당초 국내 매출 규모가 큰 다국적 제약사의 가격을 억제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했다. 이 때만 해도 국내 신약 가운데 처방이 활발한 약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미미했으며, 매출 규모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들의 판매량이 하루가 다르게 늘면서 국내사들도 다국적 제약사와 같이 '사용량-약가연동제'를 적용해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 제약사들은 오랜 시간과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개발한 신약이 국내 시장에서 잘 팔린 덕(?)에 해외시장 진출시 국내서 깎인 가격으로 수출 가격을 협상해야 하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국내 제약사에게만 '사용량-약가연동제'를 제외시키는 혜택을 주자니, 역차별 문제가 불거질 것이 뻔해 두 눈 뜬 채 국내사들의 매출이 쪼그라드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놀텍은 지난 2009년 출시 이후 2012년까지만 해도 처방이 미미해 연매출 30억원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위궤양 치료제에 '미란성 역류성 식도염' 적응증을 추가한 이후 사용량이 급증, 연매출 140억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약이 잘 팔릴수록 '사용량-약가연동제'가 지속적으로 적용돼 가파르게 가격이 내려갔다.
14호 국산 신약인 놀텍은 2009년 첫 출시 이후 가격이 계속 깎여 올해는 최초 가격보다 15%나 떨어졌다.
놀텍은 지난 2011년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로 1403원으로 가격이 깎인 데다, 2012년 사용량 약가 연동제 협상으로 1354원까지 가격이 떨어지더니 지난해에는 1300원, 적응증 추가 이후 매출이 급상승해 올해는 1192원까지 약값이 깎였다.
일양약품은 브라질, UAE, 터키 등의 제약사와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해외시장에 진출했지만 수출 가격 협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내에서 깎인 가격으로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양약품은 올해 국내에서 '비미란성 역류성 식도염'과 '헬리코박터 제균' 적응증을 추가시켜 매출 500억원대 규모 제품으로 성장세를 끌어올릴 계획이었지만, 이 같은 성장세가 오히려 가격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돼 당혹스럽기만 하다.
15호 신약인
보령제약(003850)의 고혈압치료제 ‘카나브’도 사용량 급증으로 '사용량-약가연동제'가 적용돼 약값이 기존 155원에서 147원까지 떨어졌다. 회사 측은 즉시 복지부를 상대로 부당 약가인하 요인이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보령제약에서 제시한 부당사유의 타당성을 인정해 회사 손을 들어줬다. 결국 '카나브'는 155원의 기존 가격을 지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미 보령제약의 손실은 만만치 않다. 보령제약은 '사용량-약가연동제'로 인한 국내 약가 인하로 국내보다 낮은 가격을 요구한 터키와의 수출 협상을 막판에 포기해야만 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사용량-약가연동제'는 다국적제약사의 약값을 떨어뜨려 재정 지원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국내사들의 신약 성과가 빛을 발하면서 오히려 회사 성장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돼 버렸다"며 "수십년의 연구 끝에 개발한 신약을 예상을 훨씬 밑도는 약가를 받고 출시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여기서 또 매출이 어느 정도 발생하면 사용량 연동에 걸려 약가는 여지없이 깎여나가 글로벌 시장을 준비하는 국내사들에겐 치명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