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 한국판 '국왕 모독죄' 되나

태국, '국왕 모독' 처벌 규정했지만 단순 비판도 강력 처벌

입력 : 2014-10-10 오후 5:05:41
[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검찰의 사이버 명예훼손 단속 강화 방침이 나온 이후, 외국 언론사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쓴 칼럼 때문에 기소되면서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더욱이 검찰의 이같은 방침이 박 대통령의 발언 직후에 나왔다는 측면에서 사실상 대통령 보호를 위한 법 아니냐는 폭발력이 만만치 않을 기세다.
 
특히 외국 언론사 기자가 본국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한국 대통령에 대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으로 기소가 된 것은 군사정권 시절 이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검찰이 전방위적으로 '대통령 심기 경호'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이 문제는 외국 언론인을 비판 기사를 이유로 기소했다는 측면에서 외교 문제 소지까지 안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번 검찰의 기소에 대해 "언론의 자유와 한일관계 관점에서 무척 유감"이라며 "국제사회의 상식과도 매우 동떨어진다"고 맹비난했다.
 
'극우' 성향인 산케이신문과는 대척점에 서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 아사히신문도 이번 검찰 기소를 "폭거"라고 반발했다.
 
◇지난 8월18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는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검찰이 그를 지난 8일 기소하자 일본 사회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News1
 
검찰의 이런 모습은 과거 'PD수첩 광우병 보도' 관련 PD수첩 제작진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던 과거 행태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이 '외교관계'와 '과거 PD수첩 제작진의 무죄 사례'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통령 심기 경호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검찰의 기소가 특히 우려되는 것은 향후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 있는 외신 기자가 대통령에 대한 '산케이'식의 보도를 했을 경우, 검찰은 이번 선례를 들어 수사에 착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외국 기자들에게는 대통령에 대한 보도에 신중을 기하라는 검찰의 경고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해외 언론에 우리 정부의 언론에 대한 이런 태도가 더욱 부각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민주국가에서도 국가 지도자에 대한 비판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태국이 대표적이다.
 
태국에선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에 대한 비판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태국 형법 112조가 '국왕모독죄'가 있다. 국왕과 왕족을 모독한 내국인과 외국인은 3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문 그대로 자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9년 한 호주인은 국왕과 왕자 등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3년 형을 선고 받았다. 그가 태국에서 출간한 책의 내용 중 몇 문장이 문제가 됐다. 지난 2011년에는 한 미국인이 푸미폰 국왕의 전기 작품을 번역해 인터넷에 게시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결국 2년6개월을 선고 받고 1년 가까이 형을 산 뒤, 푸미폰 국왕에 의해 사면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재향군인의 날 기념 임원들과의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국왕 모독죄' 적발을 위해선 태국 정부가 총 동원된다. 지난 2011년 11월 태국 정부는 정보통신기술부 장관 명의를 통해 페이스북에 "왕실 비방글 1만여 개가 있다. 왕실 비방글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동시에 태국인들에게는 "문제의 글들을 클릭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2012년에는 우리나라 한 일간지의 북한 출신 기자가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푸미폰 국왕과 북한 김일성 주석과 비판한 글을 올린 후, 주한국 태국대사관으로부터 항의서를 받은 일이 인터넷을 통해 전해졌다.
 
이처럼 태국 '국왕모독죄'에서 규정한 '모독'에는 정확한 기준이 없다. 국왕에 대한 소문을 게시해도 '모독'이 되고, 국왕 가족의 이야기를 언급해도 '모독'이 된다. 또 위 사례처럼 단순히 누군가 '비교'를 했다는 이유로도 '모독'이 된다.
 
단속 기준이 모호한 검찰의 사이버 명예훼손 단속 강화 방침에 뒤이은 가토 지국장에 대한 기소가 태국 '국왕 모독죄'의 한국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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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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