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걸. (사진제공=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
[인천=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푸른색 코트 위로 휠체어를 탄 세 명의 남자들이 들어선다. 밝은 표정으로 한 손에 라켓을 다부지게 감아쥔 이들은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인천APG)에 출전할 대한민국 장애인휠체어테니스 남자 국가대표 선수. 대회를 준비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은 휠체어테니스야말로 '역동적이며 다이나믹한 경기'라고 이야기한다.
그중 유독 피부가 까무잡잡하면서 멋스런 선수 한 명이 눈에 띤다. 이하걸(42·달성군청), 그에게 휠체어테니스에 인생을 걸은 그의 인생을 듣는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하고 활발한 학생이던 이하걸은 1988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그는 덤프트럭에 치이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고, 결국 두 다리를 잃어야 했다. 한창 사춘기인 청소년기에 그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일이었다.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상심 중 그의 부모는 그에게 장애인 직업훈련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그는 직업훈련을 받으며 "세상에 이렇게도 장애인이 많구나"라고 느끼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고 다른 장애인들로부터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배웠다.
직업훈련을 통해 그는 장애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활달함을 되찾아 휠체어탁구, 휠체어농구, 좌식배구 등 여러 운동을 경험했다. 그중 휠체어탁구는 단지 경험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하며 경북지역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곧 비전과 현실문제의 괴리에 맞닥뜨린다. 휠체어탁구는 선수층, 인기, 지원이 크지 않았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휠체어테니스가 나타났다.
"휠체어탁구와 달리 휠체어테니스에서는 꿈을 봤어요. 실제로 많은 장애인스포츠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못 갖췄지만, 휠체어테니스는 달랐죠. 장애인스포츠 중에 가장 활성화되고 프로화돼 있었어요."
그렇게 그는 휠체어테니스를 택했고 새로운 삶의 길을 걸었다. 1995년 가슴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이후 매년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갔다.
뿐만 아니라 초기 국가대표시절에는 연간 3~4개, 최근엔 연간 10개 이상의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아시안게임은 벌써 이번이 4번째 참가일 정도로 베테랑 중의 베테랑으로 우뚝 섰다.
◇휠체어테니스 연습 장면. (사진제공=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
누구보다 선수 경력이 많은 그에게도 훈련에 어려움이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소화해야하는 격한 움직임도 문제였지만, 그 가운데 이뤄진 급격한 체력의 소모가 큰 문제였다.
'이렇게 힘든 것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자문(自問) 속에서도 그는 훈련에 매진했고 결국 이를 극복해냈다.
그는 "다른 종목 운동들은 움직임이 제한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휠체어테니스는 달라요"라며 "역동적이면서 다이나믹하죠. 이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종목의 매력을 밝혔다.
현재 남자 휠체어테니스 세계 최고는 일본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세계 최고인 일본 선수들과 실력 차이가 있지만 최근 대만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우리 선수들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며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이기 때문에 꼭 일본을 이겨 금메달을 손에 넣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인천APG를 준비하며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자신의 강점인 포핸드 스트로크를 살리고, 그 외 약점은 보완하는 중이다. 더불어 그동안 시합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적어둔 '다짐노트'를 보면서 자신의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