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불황의 무풍지대가 있다. 바로 0~14세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엔젤산업(키즈산업)'이다.
한 자녀 부모가 늘고 부모의 소비활동이 전적으로 자녀에게 쏠리면서 엔젤산업은 경기 불황 속에도 나홀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시장에서는 패션, 식품 산업은 물론 부동산 관련 시장까지 키즈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키즈시장 뜰 수밖에 없는 이유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저출산 분위기는 엔젤산업의 성장을 이끈 핵심 키워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1.18명으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가정, 한자녀'인 이른바 '외둥이 시대'다.
반면 맞벌이 가정은 점차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 현재 배우자가 있는 1178만 가구 가운데 맞벌이 가구는 505만5000 가구로 전체 절반인 42.9%에 달했다.
출산율이 감소한 데다, 맞벌이 가정 증가로 가계소득이 높아지면서 부모의 관심이 오로지 아이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엔젤산업의 성장을 이끈 배경이다.
3살 자녀를 둔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이 모씨는 "부부 것은 아껴도 아이에게 만큼은 비용을 따지지 않고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려고 한다"며 "맞벌이로 인해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지 못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그에 따른 씀씀이도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경제력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자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면서 엔젤산업의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으로 늘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아이들은 줄어드는 반면 경제력 있는 조부모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손자에게만큼은 지출을 아끼지 않는 식스포켓(Six Pocket) 현상이다.
식스포켓은 한 명의 자녀를 위해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6명이 기꺼이 주머닛돈을 꺼내는 현상을 일컫는다. ‘내 아이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다’는 심리가 유아·아동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저출산이 영·유아 관련 산업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하나뿐인 자식을 남다르게 키워보겠다는 부모의 열망으로 키즈산업이 오히려 유망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돈되는 '키즈 시장'으로 눈 돌린 기업들
경기 침체에도 아이에 대한 투자에는 인색하지 않은 부모 마음이 시장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녀와 관한 것이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른바 '골드 키즈 맘’을 타깃으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어린이 과자와 음료가 진열된 초록마을 내부 모습.(사진=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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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영·유아를 겨냥한 친환경 먹거리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친환경 전문매장인 초록마을은 전국에 340개의 매장을 보유, 2002년 1억7000만원이던 매출이 지난해에는 1384억원까지 급성장했다. 내 아이를 위해서는 비용을 더 지불하고서라도 안전한 음식으로 여겨지는 친환경 식품을 먹이겠다는 부모들의 심리 덕분이다.
아웃도어 시장도 '키즈'가 화두다. 키즈 라인을 확대하는가 하면 키즈 단독 매장까지 오픈하고 나섰다.
지난해 하반기 블랙야크는 키즈라인 단독으로 매장을 구성해 백화점에 입점했으며, 지난해 선보인 이랜드의 뉴발란스 키즈 역시 론칭 1년 만에 누적 매출 200억원을 넘어서면서 키즈라인으로 경기 불황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먹고 입히는 것 외에도 키즈시장의 범위는 광범위하다.
최근
현대리바트(079430)는 유아전문 가구브랜드 '리바트 키즈’를 선보였으며, 소파 전문기업인 로코코소파 역시 13년 만에 처음으로 '로코코 키즈'를 론칭하며 키즈시장에 발을 내딛었다.
◇새롭게 론칭한 '리바트 키즈'(왼쪽)와 '로코코 키즈'(오른쪽).(자료=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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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키즈 가구 시장은 약 2000억원 규모로 추산되며, 매년 약 3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가구업계의 주목도가 커졌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이 8세~ 15세를 위한 가구상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보니 취학 전 아동,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 유아용 가구는 아직 태동기에 불과해 성장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위해 친환경 인테리어 자재로 아이방을 꾸며주고자 하는 부모들이 증가하면서 인테리어 업계도 키즈시장에 눈을 돌렸다.
LG하우시스는 환경호르몬 및 유해물질 방출을 최소화한 기능성 안전 바닥재와 식물성 소재와 천연 종이로 구성된 벽지 등을 선보이며 키즈라인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교적 비싼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품질과 안전성 등의 성능을 인정받고 친환경 제품을 원하는 고객의 요구에 부합하며 꾸준히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고가의 IT기기와 통신 서비스로까지 엔젤산업이 확대되는 추세다.
◇LG전자의 '키즈패드2'(왼쪽)와 SK텔레콤의 '키즈폰 준'.(자료=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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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066570)는 최근 유아전용 태블릿PC '키즈패드2'를 선보였다. 한글과 영어, 중국어를 동시에 학습할 수 있는 '디즈니 삼중언어' 등 다양한 학습 콘텐츠를 제공한다. 또 '엄마모드'를 통해 아이와 엄마가 쪽지를 주고받거나, 아이가 학습한 콘텐츠 사용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SK텔레콤(017670)이 내놓은 어린이 전용 단말기 'T키즈폰 준'도 키즈시장에서 통했다. 키즈폰 준은 자녀의 안전을 관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기기로, 지난달 가입자 5만명을 돌파했다.
기업들이 앞다퉈 키즈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가운데 엔젤산업의 성장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업종이 포화상태인 가운데 너나할 것 없이 키즈라인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움직임"이라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엔젤산업은 불황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분야로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성인제품보다 키즈제품의 가격대가 높아 이에 대한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부모들의 심리를 이용, 키즈제품의 가격을 고가로 형성하면서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업들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