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재자', 김일성이 된 설경구의 경이로운 연기

입력 : 2014-10-20 오후 7:03:16
◇설경구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안 해본 직업이 없어보인다. 검사, 형사, 소방관은 물론 레슬링 선수, 탈옥수, 스파이에다가 아동성폭행을 당한 딸의 아버지까지 소화했다. 배우 설경구는 그렇게 많은 직업과 역할에 자신의 얼굴을 부여했다.
 
이번에는 좀 더 다르다. 김일성이 된 어느 무명배우다. 메소드 연기가 일상 생활까지 침투해 실제 김일성이 된 것처럼 살아가는 인물인 김성근을 설경구가 연기한다.
 
영화를 취재진에게 선공개하고 배우 및 감독의 촬영소감을 들어보는 영화 <나의 독재자> 언론시사회가 20일 오후 2시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극중 1972년 무명 연극배우인 성근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아들 앞에서 날려버린다. 무던히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험 부족과 긴장이 컸던 탓에 망신을 당한다. 이를 보고 있던 아들 태식에게 죄책감이 생긴다.
 
그러던 중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리허설을 한다는 명목 아래 중앙정보부에서 김일성 대역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합류, 김일성이 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가고, 집으로 온 성근은 이후  20여년을 김일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성인이 된 태식(박해일 분)에게 '정일이'라고 부르고, "남조선을 혁명해야 한다"는 등 아직도 김일성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부자간의 정을 다루는 이 영화에서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하다. 박해일, 윤제문, 이병준은 물론 신예 류혜영까지 앙상블을 이룬다. 그중 가장 경이로운 연기를 펼치는 이는 단연 설경구다.
 
"젓가락질 못하면 꼬추 떨어진다"면서 아들과 장난치는 아버지, 연기를 못하는 무명 연극배우, 김일성이 되가는 과정에서의 감정동요, 치매가 온 듯한 일상에서의 김일성 연기, 1994년 대통령을 만나 김일성으로 완벽히 분한 모습까지, 설경구는 한 영화에서 다섯 이상의 얼굴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김일성 역이었으면 안 했을텐데요. 김일성 대역 배우라는 역할이 흥미가 있어서 했어요. 디테일하다고 하시는데 손 연습을 많이했어요. 그렇게 많이 연습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네요. 동료배우 이준혁이 절 많이 도와줬고, 주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영상을 구해서 반복해서 많이 봤어요."
 
쉽게 말했지만, 그 과정은 고달펐을 것이라는 게 한 눈에 보인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망신을 줬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부정과 김일성 연기라는 두 가지 미션을 완벽히 소화해야되는 것은 설경구였기 때문에 가능해 보인다.
 
앞서 봉준호 감독은 "대배우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면서 설경구를 극찬했다. 이러한 극찬을 받기까지 설경구는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설경구는 "박해일 덕분에 즐겁게 연기했다. 너무나 편하게 해줬다. 저에 대한 배려가 많았다. 해일이에게 먼저 고맙다고 하고 싶다"며 "후반으로 가면서 솔직히 힘들었다. (이해준) 감독을 많이 괴롭혔다. 둘이 얼굴 안 볼 지경까지 갔다. 의지할 곳이 감독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과정이 있었다"면서 옆에 있던 이해준 감독의 어깨를 토닥였다. 미안한 감정에 대한 표현 같았다.
 
전작이었던 <소원>에서는 이준익 감독과 친구처럼 지냈던 설경구고, 기자들 앞에서도 형처럼 오빠처럼 친근하게 대하는, 멘탈이 센 편에 속하는 배우다. 그런데 대놓고 힘들었다니 <나의 독재자>의 무게가 그만큼 무거웠음을 의미하는 발언이다. 설경구는 그 무게를 훌륭히 견뎌냈다는 평가를 받기 충분하다.
 
<나의 독재자>는 오는 3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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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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