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비행은 어떻게 축구선수를 괴롭히나

입력 : 2014-10-21 오후 3:59:48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여자축구 스타 지소연(23·첼시레이디스)은 '지메시'로 불린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연상케 한다고 해 붙은 별명이다.
 
지난 1월 아이낙고베(일본)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지소연은 첫 시즌임에도 9골을 터뜨렸다. 에니올라 알루코와 함께 팀 내 득점 공동 1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여자 축구대표팀의 지소연. ⓒNews1
 
이처럼 기량이 검증된 지소연이지만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그는 펑펑 울었다.
 
지난달 29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여자축구 4강전에서 북한에 1-2로 진 뒤였다.
 
지소연은 취재진 앞에서 흐르는 눈물 때문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날 영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도 그는 재차 눈물을 흘렸다. 앞서 22일 입국해 일주일 동안 대만, 북한전 두 경기에 뛰었는데 스스로 경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팀에게 폐만 끼쳤다"는 게 이유였다.
 
지소연은 경기를 망쳤다는 자괴감과 뜻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답답해 했다. 당시 그는 후반 19분 회심의 헤딩슛을 날렸으나 골키퍼에 막혔다. 후반 42분에는 상대 수비 진영을 헤집고 특유의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을 때렸으나 골대를 맞고 튀어나왔다. 경기 내내 많이 뛰긴 했어도 날카로움은 확실히 보이지 않았다.
 
지난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지소연은 당시를 회상하며 재차 안타까움을 표했다. "시차 때문에 정말 혼났다. 3일이면 회복되겠지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3일이면 충분히 회복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시안게임 2경기 모두 내가 아니었다. (기)성용 오빠와 (이)청용 오빠와 통화하면서 시차 적응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소연이 제 컨디션 회복을 위해 예상한 3일을 찾아보면 오류가 있음이 확인됐다. 아무리 '지메시'라고 해도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뛰는 국제축구경기에서 컨디션 저하는 실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영국 무대에서 뛰고 있는 기성용(왼쪽)과 이청용. ⓒNews1
 
학계에선 비행기를 타며 겪는 시차와 컨디션 저하를 '제트래그 증후군(jet lag syndrome)'이라 표현한다.
 
지난 2000년 방상식 국군체육부대 스포츠과학연구실장이 '한국체육학회지'에 쓴 '국내 및 외국 현지 시차적응훈련이 선수 컨디션 조절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제트래그 증후군을 '시차증'으로 표현하며 동서 간의 급격한 항공기 이동으로 나타나는 신체 리듬의 부적응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신체는 24시간을 주기로 일정한 리듬을 갖는데 시차증이 체온, 수면, 심박 수, 신경 전도속도 등 여러 가지를 깨트린다고 설명했다.
 
특히 "외국 원정 경기에 나서는 선수의 시차 극복은 경기력 발휘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면서 "1970년대 일본에서 시차 적응 문제를 스포츠 현장에 적용한 결과 컨디션이 현지에서 7일째에 거의 적응됐다"고 전했다.
 
결국 영국에서 한국으로 '원정 경기'를 온 지소연에게 3일이란 시간은 완벽한 컨디션을 만들기까지 짧은 기간이었다.
 
이러한 장거리 비행은 선수의 몸을 서서히 망가뜨리기도 한다. 최근 은퇴한 박지성이 대표적인 예다.
 
A매치와 각종 평가전을 위해 한국과 영국을 오간 그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심해졌다.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설이 흘러나올 때마다 그의 아버지인 박성종 씨는 "지성이가 장시간 비행기를 타면 무릎에 물이 찬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2003년에 무릎 연골판 수술을 받고 2007년에 다발성 천공술 수술을 한 박지성은 2009년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구단 측으로부터 "5년 정도 버틸 수 있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이후 박지성은 계속된 장시간 비행으로 무릎 상태가 악화됐다.
 
◇장시간 비행으로 무릎 상태가 악화되며 일찍 은퇴한 박지성. ⓒNews1
 
오랜 기간 축구대표팀의 의무팀장을 지낸 최주영스포츠재활클리닉의 최주영 원장은 2012년 쓴 자신의 저서 <300번의 A매치>에서 "사람의 몸은 참 신기하다. 환경의 영향으로 몸속에서 여러 가지 반응이 일어난다. 특히 날씨와 기온에 따른 몸의 변화는 시시각각 달라진다"며 "사막성 기후인 중동의 여러 나라에 가게 되면 나는 선수들의 신체적인 변화를 예의 주시한다. 오랜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 회고했다.
 
이어 "2006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축구대표팀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마지막 훈련을 했다. 12시간이라는 길고 긴 비행 끝에 스코틀랜드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탄 탓인지 몸이 축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 느낌은 비단 나뿐 아니라 선수들도 느끼고 있을 터였다"라고 썼다.
 
이와 관련해 한국스포츠개발원 정진욱 박사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보통 시차 문제는 멜라토닌 호르몬에 영향을 받는다. 제일 영향을 많이 받는 게 빛과 음식"이라며 "3시간 이상 차이가 나는 곳을 가면 시차 문제가 생긴다. 바이오 리듬이 있고 일주기 리듬이 있는데 동서로 지나갈 때 특히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어 "2~3일째가 시차 적응에서 가장 힘들다. 운동선수들도 시차 적응에 빠른 선수가 있고 늦는 선수가 있다"면서 "자주 왔다 갔다 하면서 적응하는 선수도 있지만 계속 힘들어하는 선수들도 있다. 이럴 경우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레버쿠젠의 손흥민. ⓒNews1
 
'박지성 시대'를 기점으로 축구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더욱 활발해졌다. 이제는 비행시간 문제도 선수 개인에겐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손흥민(레버쿠젠)은 지난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 평가전 직후 "소속팀 경기도 많고 대표팀 경기를 위해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유럽과 한국을 오갔다"며 "체력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독일 분데스리가에만 손흥민과 박주호, 구자철(이상 마인츠)을 포함해 대표급 선수 6명이 있다. 영국에도 기성용(스완지시티), 이청용(볼턴), 윤석영(QPR) 등이 언제든 국내외 평가전에 소집될 선수들이다.
 
축구 산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경기가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월드컵과 올림픽 외에도 대륙별 대회와 유명 클럽들의 투어도 생겼다.
 
국내외 A매치와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는 챔피언스리그 일정까지 고려하면 선수들이 비행기에 몸을 싣는 시간 또한 신중히 따져봐야 할 변수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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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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