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비겁한 세상을 향한 잔잔한 일침

입력 : 2014-10-22 오후 7:03:05
◇<카트> 포스터 (사진제공=명필름)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습니다."(부지영 감독) "제 이웃의 이야기이고 내 옆사람의 이야기고 혹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영화."(문정희) "나는 혹시 가해자의 위치에서 갑질을 하지는 않았을까 돌아보게 됩니다."(김영애) "대중을 떠나면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일 뿐이에요."(염정아) "갑질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을'들도 이 영화를 봤으면 합니다."(이승준)
 
영화 <카트>를 만든 부지영 감독과 배우들 사이에서 진솔한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얼음장 같은 언론시사회에서 박수가 먼저 터져나왔다.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문정희의 말이 끝났을 때도 환호와 함께 박수가 나왔다. 차갑고 냉정한 취재진의 마음을 움직인 <카트>의 22일 언론시사회 현장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카트>는 대부분 여성으로 이뤄진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다. 일률적인 상업영화로 도배되고 있는 국내 영화계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비정규직자들의 이야기'다. 회사의 일방적 해고 통보 앞에서 무력했던 사람들이 힘을 뭉치고 파업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연출을 맡은 부지영 감독은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이슈고, 영화사 명필름이 이걸 상업영화로 한 건 용기있는 시도"라며 "많은 배우들과 행복한 촬영을 했다"고 말했다.
 
부 감독은 2년 전부터 영화 각색 과정에 참여했다. 영화의 핵심적인 사건인 이랜드 홈에버 노동자 문제를 비롯해 청소부 문제 등 비정규직 투쟁을 포괄적으로 조사했다고 했다. 실화를 소재로 쓴 이 영화는 <도가니>처럼 또 하나의 반향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부 감독은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사회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실화를 소재로 영화로 표현하는 것은 다시 한 번 고민을 던져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이 영화의 연출의도를 밝혔다.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는 구호를 외치고 일터에서 쉼 없이 일하던 중 하루 아침에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는 여성 노동자들을 다룬다. "이건 너무도 지나친 처사"라며 노동조합을 만들고 회사라는 거대한 바위에 맞붙는다.
 
마트를 점거해 잠도 자고 밥도 마트에서 해먹는다. 아이을 아예 데려온 엄마도 있다. 1월부터 3월까지 진행된 촬영이었던 터라 여배우들에게도 꽤나 힘겨운 시간이 됐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배우들은 함께해서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문정희는 "지금도 옆에 있는 이 분들이 조합원 같다. 남자의 의리만큼 여성들도 의리나 우정에서 끈끈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여자들하고 있어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강우는 "추웠지만, 청일점으로 선배님들과 함께 해서 즐거웠다"고 했고, 부지영 감독은 "많은 여배우들과 행복한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거대한 회사 앞에서 개인은 나약한 존재다. 진부하지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 뿐이 답이다. 그렇게 하나로 뭉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날 배우들 역시 영화를 찍으면서 커다란 울림을 느낀듯 했다.
 
문정희는 "결국 내 얘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움직였다. 염정아와 김영애 선생님이기에 더욱 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배우들이 뭉치면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에너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어른인 김영애 역시 의미있는 발언을 남겼다.
 
"안 해본 역할이나 장르 때문에 작품을 선택한 적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는 목적으로 출연한 영화는 <카트>가 처음"이라고 운을 뗀 김영애는 "살면서 벽에 많이 부딪칠 때가 있다. 거대한 벽일 수 있고, 얇은 벽일 수도 있다. 때로는 내가 의도하지 않게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갑질을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갑 행세를 하지 않았나 돌이켜봤다. 많은 분들이 갑의 위치에서 갑질을 하지 않았나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애의 입에서 천천히 떨어진 이 말은 차가운 기자간담회에 큰 울림을 줬다. 자신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감동적인 워딩이었다는 말이 취재진 사이에 돌았다. 그만큼 영화의 내용이 깊었고, 수준 높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카트>는 오는 11월 1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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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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