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익숙함에 가려져 있었던 환풍구의 공포

입력 : 2014-10-23 오후 5:14:09
[뉴스토마토 김현우기자] 지하철 환풍구 위로 자주 지나갔다. 철제 덮개 아래로 10m가 넘는 낭떠러지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일상에서 걷는 길들 중 일부였다.
 
판교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유스페이스 광장의 환풍구도 일상이었을 것이다. 출퇴근하면서, 식사를 하러 나오면 그 환풍구를 지나쳤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동료들과 잡담을 하는 공간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기 아이돌 그룹을 보려고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유스페이스 광장에 모이자 일상에 균열이 생겼다. 내가 튼튼한 땅이라고 믿었던 환풍구는 스무명 정도의 사람들도 지탱하지 못하는 허약함을 드러냈다.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들을 비난한다. 왜 위험한 곳에 올라갔느냐고.
 
하지만 이런 비난은 옳지 않다. 그들은 연예인을 보기 위해 위험을 알면서도 올라간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익숙했던 그 곳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익숙함은 무섭다. 우리 삶을 더 편하게 해주지만 위험에 대한 경고마저 둔하게 만든다.
 
판교 사고 이후 안전 관리를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익숙함 뒤에 숨어있는 위험을 미리 알고 관리하는 것은 힘들다. 27명의 사상자라는 큰 대를 치르고 나서야 환풍구의 위험성을 깨달은 것처럼.
 
예전처럼 지하철 환풍구 위를 지나다니지 못할 것 같다. 다소 돌아가거나 행인이 많아도 길이 아닌 환풍구 위로는 걷지 않을 것이다. 인재를 막는 방법은 익숙함보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최창식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환풍구 덮개가 지탱할 수 있는 하중을 어떻게 정하느냐는 질문에 "설계자가 주변 환경 등을 계산해 적정한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한다"고 답했다. 환풍구 위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는 것은 설계자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일이 아니었다.
 
인도가 아닌 곳으로는 다니지 않기, 비행기 항로에 고층 건물을 짓지 않기, 잠수부가 작업하고 있을 때는 터빈을 끄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원자력 발전소는 줄여나가기 등등 인재를 막을 수 있는 상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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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