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혜실기자] 수도권의 편중성을 완화함과 동시에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을 다짐하던 국토균형발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지방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할 기업들이 다시 수도권으로 유턴하면서다.
재계 빅4중 총수가 공백으로 있는 SK그룹을 제외한 삼성, 현대차, LG 세 곳이 서울에 대규모 연구단지를 설립, 서울 공화국에 앞장선다.
삼성전자는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연면적 3만3000㎡, 6개 동으로 이뤄진 첨단 R&D 센터를 건립 중이다. 1조원 넘게 투입했으며, 연구센터는 내년 5월 완공 예정이다.
LG는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파크 기공식을 열고 마곡시대를 열어 젖혔다. 오는 2020년까지 4조원을 투입해 축구장 24개 크기인 17만여㎡의 부지에 18개 동의 연구시설을 건립한다.
현대차는 땅값만 무려 10조5500억원을 들여 사들인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에 4~5조원 가량을 추가로 투입해 통합 사옥(글로벌 비즈니스센터)을 짓는다. 기존 양재동 사옥은 연구소 등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처럼 대기업들의 수도권 투자가 집중된 것은 정부의 정책 변화와 맞물려 이공계 인력 확보 차원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 2004년 지방투자촉진보조금 제도를 도입해 기업들의 지방 이전을 장려해 왔다. 하지만 입지 보조금이 크게 줄고 설비투자에 대한 지원만 남겨지면서 기업들이 지방으로 내려갈 유인책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정책적 효과를 기대키는 어렵게 됐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수도권 기업의 지방이전 및 신·증설 촉진을 위해 설비투자에 대한 지원율을 올해 12%에서 14%로 상향 조정키로 했다. 하지만 정책의 핵심인 입지보조금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38%나 줄였다.
입지보조금이 사실상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는 의견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의 지방 이전을 유인할 매력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정부의 이공계 육성 정책과 맞물리면서 이공계 인력들이 수도권에 자리잡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동안 인문경영 전공자들 대부분은 수도권에 자리잡은 반면, 이공계 출신들은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인식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기류 변화로 대기업들은 지방에 흩어져 있던 이공계 인재들을 서울로 모아 연구개발 영역의 시너지를 크게 높이겠다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비용 감축보다는 인력 확보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가 기업들의 생존 여부를 좌우하면서 기업들의 의지도 한층 높아졌다.
재계 관계자는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 미래성장을 위한 연구개발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우수한 인력 확보 차원에서 기업들이 앞다퉈 거액을 투자하면서까지 수도권에 대규모 연구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연구소 부장은 "한동안 지방의 균형발전이 잘 됐는데 주요 재벌 그룹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서 다시 수도권 편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지역간 불균형뿐 아니라 부동산 개발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기공식 현장 입구(왼쪽)와 박근혜 대통령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착공 기념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오른쪽)(사진=뉴스토마토, LG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