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박근혜정부 출범 2년 만에 벌써부터 재정고갈 논란이 제기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누리과정(3세∼5세 보육비 지원사업)과 무상급식을 주장했는데, 중앙과 지방정부 모두 예산이 없어 사업추진을 꺼리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무상보육 문제를 둘러싼 중앙과 지방, 여·야 갈등은 40조원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번 정권 내에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함에 앞뒤 안 가리고 정책을 내뱉었으나 재정건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게 닮았기 때문이다.
6일부터 시작된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무상보육 문제다. 이번 논란은 전국 17개 지방교육청과 각 지자체가 누리과정과 무상급식 예산이 포함되지 않은 새해 예산안을 제출해 정부의 무상보육 정책에 반기를 들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6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파탄위기 해결과 교육재정확대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News1
전국 시·도교육감은 물론 지자체장 역시 교육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무상보육과 비슷한 맥락의 교육 복지공약을 발표했는데 지금 와서 정부에 등을 돌린 이유는 뭘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측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올해보다 1조3000억원 삭감해놓고 시·도 교육감에는 내년에 누리과정 예산 6조700억원 편성하도록 지시했다. 무상보육에 쓸 중앙 지원금은 줄여도 지방재정은 늘리라는 것.
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청와대와 중앙정부는 준비도 제대로 안 된 공약을 남발하더니 지방정부에는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라는 억지를 부린다"며 "지방채는 결국 지방이 갚아야 할 빚이고 공교육을 황폐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방 교육감과 지자체장들 모두 무상보육을 공약했으나 누리과정과 무상급식을 누구보다 외쳐 온 게 박 대통령이고, 재정고갈 지적에도 무상보육을 입법화한 게 이번 정부라는 점에서 정부가 무상보육 논란과 재정부족 문제의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상보육과 교육 재정고갈 문제는 정치권으로도 옮겨붙었지만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새누리당은 재정악화 탓에 무상보육 등을 포함한 국정과제 우선순위를 재조정하자는 타협안을 냈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데 여당이 재정을 핑계로 복지확대 공약을 슬그머니 뒤집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자칫 재정고갈을 우려해 예산안 심의에서 무상보육 정책이 크게 후퇴하거나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셈. 무상보육만 믿고 기다려온 국민만 바보가 될 처지에 놓였다.
한국지방세연구원 관계자는 "박근혜정부 출범 때부터 재정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무상보육 정책은 추가비용 발생이 불가피하고 중앙이든 지방이든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치명적일 것이라는 지적이 수차례 나왔다"며 "예산안 심의기간은 한달 뿐인데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 결론 나든 중앙과 지방, 정치권 각자의 손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6일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서울 여의도 예결위 전체회의에 출석했다.ⓒNews1
문제는 무상보육 논란이 재정고갈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무상보육 논란은 겨우 6조원이 없어 생겨났는데, 최 부총리의 경기부양책은 40조원이 투입돼서다. 무상보육 문제를 일시적 현상이라고 간과하면 초이노믹스라는 더 큰 암초를 만날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 7월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40조원 규모의 거시정책 패키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는 대신 재정과 금융에서 돈을 풀어 내수를 활성화하고 부동산과 증권시장 규제들을 완화해 경기를 부양시키는 게 핵심이다.
40조원 중 21조7000억원은 올해 하반기까지 공급하고 13조원은 하반기부터, 3조원은 내년부터 지원할 계획이지만, 가계와 정부 부채가 사상 최고수준에 이르고 교육에 쓸 돈도 없는 마당에 경제부총리마저 무리한 재정공약을 내놨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증세는 없다'는 박 대통령의 방침 탓에 정부는 쓸 돈이 많지만 돈을 만들 구멍(국민의 조세부담률 조정)을 열지 못하고 있어 세입·세출 구조마저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박근혜정부의 복지확대 공약과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가 임기 중후반까지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며 "지금과 같은 세입·세출구조에서는 2034년쯤 재정파탄 상태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예산정책처가 최근 낸 ‘2014년~2060년 장기재정전망’ 자료를 보면 올해 527조원인 국가채무는 내년에는 571조4000억원까지 증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연평균 7.6%씩 늘어나 2034년부터는 국가채무를 못 갚은 국가부도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