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평소 법정 모습과 사뭇 다르다. 재판 도중 방청객에서 여러번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재판장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12일 오전 10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진행된 열린법정에서의 모습이다. 27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송상현홀에는 대부분 서울대 로스쿨 학생들로 꽉찼다.
이날 열린법정에서는
대한항공(003490)이 영국 유명 사진작가인 마이클 케나 작품의 저작권을 침해했는지에 대한 항소심 변론이 진행됐다
변론을 진행하기 전 이날 재판을 담당한 서울고법 민사 5부 재판장 이태종 부장판사는 "추상적인 법 명제가 구체적인 사례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재판부에게는 자유로운 대화와 분위기속에서 법의 굴레적 이념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김모 씨는 영국 유명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와 같은 구도로 촬영한 솔섬 사진을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 출품했고, 대한항공은 이를 광고에 사용됐다.
이에 마이클 케나는 자신의 작품을 대한항공이 광고사진으로 사용해 저작권 침해를 입었다며 3억원의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풍경을 언제 어떻게 찍느냐는 일종의 아이디어로, 매번 다르기 때문에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한 것.
◇(왼쪽부터)마이클 케나의 솔섬 사진과 대한항공 광고 동영상으로 이용된 사진(사진=서울고등법원)
이날 양측 대리인들은 변론에 도움이 되는 사진과 동영상 등의 설명자료(PT)를 스크린에 띄워 방청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뒤쪽에 앉은 방청객들은 중간에 위치한 텔레비전(TV)를 통해 볼 수 있게 했다.
마이클 케나측 대리인은 "대한항공이 공모전을 이용해서 마이클 케나의 사진을 도용했다"면서 "이 사건은 프로사진가와 아마추어 사진가의 분쟁이 아니라 아마추어의 사진을 이용해 헐값에 유명작가의 사진을 우회도용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두 사진을 보면 피사체만 같은 게 아니라 사진 각도와 구도, 반영의 형태, 윤곽선, 셔터스피드 등이 동일하다"며 "대한항공측은 작품을 선, 색, 점, 여백 등 요소를 분리해서 봐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작품은 이들의 합이기 때문에 전체를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 대리인은 "사건의 본질은 대한항공이 도용한 게 아니라 김 작가가 마이클 케나의 사진을 모방 촬영함으로 인해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피사체가 같다는 이유로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하면 자연물에 대한 독점권을 인정하는 셈"이라고 반박했다.
또 "마이클 케나는 피사체가 동일하다는 이유로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며 "이 논리라면 같은 장소에서 찍은 자연물 작품에 대해 모두 저작권 침해를 인정해야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 방청객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기도 했고, 노트북을 이용해 중요한 발언을 적기도 했다. 또 옆에 앉은 지인과 조용히 토론을 하는 등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간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대한항공 대리인에게 주어진 반론 시간이 끝나자 재판장이 "약속한 시간이 다 됐다. 재반론 시간을 포기하면 계속하셔도 되고 아니면…"이라고 하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한항공 측 대리인이 "포기하겠다"라고 답했다.
대한항공 측 대리인의 단호한 대답에 방청객들은 술렁였다. 대한항공 대리인은 "시간이 남은 관계로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설명하겠다'고 말하자 곳곳에서 웃음이 나왔다.
대한항공 대리인의 반론이 끝나자 재판부는 "다음에 변론할 때 방청석 뿐 아니라 재판부도 신경써달라"고 지시하자 이번에는 폭소가 터졌다.
아울러 평소 법원에서는 볼 수 없는 속기 화면도 접할 수 있었다. 서울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김모(30) 씨는 "대리인과 증인이 속사포처럼 하는 말을 어떻게 실시간으로 받아 쓰는지 궁금했는데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난 후에는 질의응답도 진행됐다. 서울대 로스쿨 2학년에 재학 중인 최영훈 학생은 "법원에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는 기준이 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이태종 부장판사는 "재판부가 지식 전문 내용을 전문으로 다루면서 기조를 확립하고 있지만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며 "각 작품사진마다 다투는 사안이 다르므로 여러 요건을 고려해서 기준을 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열린법정을 방청한 조모(42) 씨는 "법이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법률에 대한 문외한인 사람이 보기에도 위화감 없이 흥미로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해 3월 시작된 캠퍼스 열린법정은 연세대·성균관대·고려대·이화여대에서 개최됐으며, 올해 들어서는 처음이다.
지역민들의 접근성이 뛰어난 대학 공간을 활용해 재판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고,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증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이태종 부장)가 12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진행된 '캠퍼스열린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