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완생이 되지 못한 '미생'..그래도 성과는 적지않다

입력 : 2014-12-21 오후 2:02:16
◇<미생> 포스터 (사진제공=tvN)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어려서부터 바둑만 두고 살아왔던 26세 장그래(임시완 분)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자격증이라고는 '컴활'(컴퓨터 활용능력) 뿐이었다. 고등학교도 검정고시였다. "도데체 스물 여섯 먹을 때까지 뭘 한 거야?"라는 말을 들어도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던 장그래였다.
 
그런 장그래가 요르단으로 넘어가 영어를 구사하고 건물을 뛰어넘는 추격전을 펼쳤다. 불과 3년 사이에 장그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있었다. 벌써부터 영화 <용의자> 포스터 공유의 얼굴을 임시완으로 바꾼 패러디물이 등장할 정도다. tvN 금토드라마 <미생>은 '판타지 드라마'로 마무리됐다.
 
<미생> 원작을 좋아했던, 혹은 드라마 <미생> 초반부에 열광했던 팬들은 이러한 결말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듯 각종 게시판에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3년 사이에 극적인 발전을 보인 한 남자의 성장기는 '내 이야기'에서 '남의 이야기'가 된 터라 허탈감도 커보인다.
 
올해 최고의 드라마로 군림하며 지상파를 비웃었던 <미생>은 끝내 미생으로 남았다. 그래도 <미생>은 웰메이드 드라마다.
 
<미생>이 남긴 의미는 적지 않다. 인간 군상을 담으며 직장인의 애환을 공감어리게 표현한 점, 튼튼한 원작의 힘을 보여준 점, 러브라인 없이도 성공가능하다는 점, 배우의 이름값에 얽매이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등은 20국을 걸어온 <미생>의 수확이었다.
 
◇<미생> 스틸컷 (사진제공=tvN)
 
◇'갑'의 시대..'을'의 아픔을 치유하다
 
소위 '갑'질이 만연하는 시대다. 대기업 직장인이라 하더라도 누군가 앞에서는 '을'이되는 세상이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장그래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을이었다.
 
'낙하산'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동기와 상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받지 못했다. 정규직 사원 교육에제외되고 햄 세트 대신 식용유 세트를 받아도 고군분투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비록 대기업 정규직에는 실패했지만, 장그래에게는 새로운 삶이 남아있었다. 오상식(이성민 분)과 함께 시작한 회사에서 그는 눈부시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다. 이렇게 1회부터 20회까지 진행된 장그래의 직장생활 애환기는 그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치유가 됐다.
 
'질'과 '양'이 다른 노력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는 장그래의 모습에서 공감을 한 시청자는 적지 않았다. 
 
"대책없는 위로와 희망이 무슨 의미가 있냐"면서 장그래의 처지를 함께 슬퍼하는 오상식(이성민 분) 차장의 한 마디는 심금을 울렸다.
 
"다른 사람이 힘든 걸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했다. '미생'은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가져가는 작품이었다"는 정윤정 작가의 말처럼 <미생>은 시청자들에게 치유를 안겨준 드라마였다.
 
◇<미생> 스틸컷 (사진제공=tvN)
 
◇진부했던 드라마 시장에 던진 화두
 
국내드라마는 '기승전-사랑'이었다. 어떤 전문직이 드라마에 등장하든 그들은 일보다 사랑을 했다. 사랑하지 않은 드라마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정도전>과 같은 정통사극, 혹은 MBC <하얀거탑> 정도가 러브라인이 없는 드라마에 속한다.
 
애초 <미생>은 러브라인이 없다고 선언하고 출발했다. 그들의 말처럼 20회까지 드라마에는 러브라인이 없었다. 중간중간 안영이(강소라 분)와 장백기(강하늘 분), 장그래 사이에서 묘한 삼각관계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어느 드라마에서나 보이는 뻔한 장면은 없었다.
 
<미생>은 직장 안에서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면서 러브라인 없이도 성공할 수 있는 드라마라는 전례를 남겼다.
 
또 원작 있는 드라마가 어떻게 리메이크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좋은 예를 남겼다. 최근 들어 원작이 있는 드라마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내년에는 더 많은 리메이크 작품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는 원작이 갖고 있는 색채를 그대로 구현하면서, 적절한 캐릭터의 변형으로 풍성한 모습을 보였다. 영업3팀은 물론 안영이, 장백기, 한석율을 포함해 강 대리, 하 대리, 마 부장, 박 과장 등 캐릭터의 폭도 원작에 비해 훨씬 더 넓어졌다.
 
에피소드도 훨씬 풍성해졌다. 웹툰에서는 보여지지 않았던 에피소드들이 첨가되면서 '웹툰을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은 드라마'라는 인식을 남겼다. 이로 인해 단순한 베끼기를 넘어선 최고의 리메이크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윤태호 작가는 "드라마 '미생'은 보다 진해졌고, 애잔함의 울림이 더 커졌다. 흐릿한 선이 분명해지고 담담한 색이 선명해졌으며 갈등하던 말이 분명한 힘을 갖게 됐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미생> 스틸컷 (사진제공=tvN)
 
◇무에서 유를 창조..스타를 만들다
 
<미생>은 스타탄생 제조 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 많은 무명의 배우들이 이름을 알렸다.
 
먼저 그룹 제국의 아이들 출신 임시완은 <미생>을 통해 연기돌을 뛰어넘는 배우로 성장했다. 담담한 표정으로 묵묵히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의 모습에서는 비정규직의 애환이 묻어났다.
 
영화의 신스틸러로 주로 출연해온 연기파 김대명은 김동식 대리로 완벽히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특히 착하고 정의로운 완벽한 직장인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하며 새 연기파 스타의 탄생을 예고했다.
 
<써니> 이후 이렇다할 대표작이 없었던 강소라는 안영이라는 대표 캐릭터를 얻었고, 신예 강하늘은 장백기를 통해 이민호, 김우빈 등의 계보를 잇는 스타 탄생을 알렸다. 만화를 찢고나온 듯 다채로운 연기력을 펼친 변요한은 독립영화에서 갈고 닦은 내공을 <미생>에 폭발시키며 큰 사랑을 받았다.
 
뿐 만 아니다. 드라마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서 조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내일 봅시다"라는 명대사를 남긴 강 대리(오민석 분)과 짜증, 히스테리로 점철된 하 대리 역의 전석호, 극초반 장그래를 더욱 외롭게 만드는 인턴 이상현 역의 윤종훈, <미생>이 낳은 송새벽 유 대리 역할의 신재훈, 성질 더러운 상사 마 부장 역의 손종학, 그 밑의 겁많은 정 과장(정희태 분), 장그래로 인해 새롭게 태어난 박 대리(최귀화 분), 한석율의 못된 고참 성 대리(태인호 분), 장백기에게 커피를 타주는 신다인(박진서 분), 유치원 교사로 장그래를 유혹하는 하선생(이시원 분), 묘한 인상의 재무부장(황석정 분)까지 <미생>을 통해 부각된 연기자는 한 둘이 아니다.
 
◇<미생> 스틸컷 (사진제공=tvN)
 
◇그래도 완생은 되지 못했다
 
더 나아가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장그래에게 오상식 차장은 그렇게 말했다. "장그래 취하지 마라."
 
하지만 아쉽게도 제작진은 한껏 드높아진 인기에 조금은 취했던 듯 싶다.
 
16화까지 원작의 배경을 토대로한 드라마 변형으로 사랑을 받은 <미생>은 17화부터 20화까지는 원작과 다른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 과정에서 기존과 달라진 톤으로 시청자들의 비판을 샀다. 절제된 시선 대신 지나치게 드라마틱해진 후반부의 에피소드 진행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특히 성대리의 불륜과정이 드러나는 장면은 이유없이 너무 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요르단에서 한 마리 표범처럼 변한 장그래의 캐릭터는 히어로물의 느낌을 줬다.
 
<미생>의 장점은 원작의 색채를 유지하면서 색다른 에피소드로 드라마만의 재미를 구현한데 있다면, 후반부 새 에피소드는 기존 작품의 색채를 없앴다. 19회의 여성 품평회 장면은 우리가 알고 있던 <미생>과 너무나도 달랐다.
 
바둑도 사라졌다. 바둑을 통해 인생을 바라봤던 장그래는 어느 순간 바둑을 지웠다. 바둑이 없어지니 <미생>만이 갖고 있던 고요한 메시지 전달도 사라졌다.
 
종영과 함께 '시즌2'의 향기가 풍기는 <미생>.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후에는 완생으로 갖춰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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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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