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표 일색' 허수아비 사외이사, 올해도 거수기 노릇만

입력 : 2014-12-29 오후 4:03:49
[뉴스토마토 김병윤기자] 올들어 시가총액 상위사의 사외이사들이 주요 의결사항에 대해 거수기 노릇만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대기업 사외사가 평균 4500만원의 연봉을 지급받으면서도 경영진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들어 삼성전자(005930), 현대차(005380), SK하이닉스(000660), POSCO(005490), 한국전력(015760) 등 시가총액 상위주들의 사외이사가 기업 의결사항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난 2010년 이후 의사결정에선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경우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행사한 적은 역시 단 한 차례도 없었고 SK하이닉스와 POSCO는 각각 1건, 한국전력이 3건에 대해 사외이사들이 반대표를 행사했다.
 
해마다 약 40~50건의 안건이 이사회에서 다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반대율은 전체 안건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사외이사 평균 보수는 지난해 기준 근로소득자 급여의 상위 20% 수준에 해당하는 약 4500만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사외이사들의 저조한 반대표 행사는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과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 증권업 관계자는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찬성 의사를 보이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반대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이사회가 유명무실해지는 신호"라며 "사외이사는 1년에 4~5번 이사회에 참석해 기업으로부터 고액의 보수를 받아가기 때문에 기업의 눈치를 많이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사외이사들의 친오너적인 행태는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진 사업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차·기아차(000270)·현대모비스(012330) 한전부지 입찰 건이다.
 
현대차는 기아차·현대모비스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전부지 입찰에 나섰고 감정가의 3배가 넘는 10조5500억원에 낙찰 받았다.
 
이에 과도한 현금자산의 유출로 인한 기업가치 하락의 우려가 제기되면서 시장에선 승자의 저주란 말이 나돌았다.
 
실제로 지난 9월18일 현대차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9.17% 급락했고 주가 급락은 이어져 20만원선이 붕괴됐다. 현재 현대차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배를 하회하며 역사적 저점으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주가는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의 올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9월17일과 지난 9월29일 각각 부동산 매입 관련 입찰 참여 승인의 건과 부동산 매매계약 체결 승인의 건을 이사회에서 주요 의결사항으로 다뤘다.
 
그 중 부동산 매입 관련 입찰 참여 승인의 건에 대해 총 사외이사 5명 중 1명이 불참한 것을 제외하면 모든 사외이사가 찬성표를 행사했다.
 
기아차와 현대모비스 사외이사들 역시 반대표를 행사한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이와 관련해 경제개혁연대 측은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이사회 의사록을 열람한 뒤, 한전 부지와 관련한 이사회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권한만을 위임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개최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회사경영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사회가 아닌 총수일가의 독단에 의해 이뤄진다는 과거 관행이 그대로 답습됐으며 개선의 전망을 갖기도 어렵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심지어 한 현대차 주주는 한전부지 고가 매입은 그룹에 손해를 끼친 것이라며  정몽구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사례로 삼성중공업(010140)삼성엔지니어링(028050)의 합병 건을 들 수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9월 삼성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할 계획이었지만 예상을 넘는 반대매수청구권 행사량에 따라 결국 지난 9월19일 합병계약 해제를 발표했고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6.39% 급락했다.
 
시장에선 삼성중공업이 삼성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할 경우 자사주 매입에 따른 현금자산 감소와 자본 차감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잇따랐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의 사외이사 중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계약 체결의 건에 반대 의사를 나타낸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른 증권업 관계자는 "일부 기업에선 반대표를 행사한 사외이사를 재연임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켜 버리는 등의 암묵적인 행동으로 지배구조가 퇴보하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며 "일부 기업에선 경영 실패가 부각되면서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들에게 떠넘겨 지고 있는 반면 사외이사들은 그냥 물러나면 그만인 구조"라고 말했다.
 
◇김충호 현대차 사장이 지난 3월14일 현대자동차주식회사 제46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정몽구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의결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한 현대차 주주로부터 한전부지 고가 매입으로 그룹에 손해를 끼쳤다며 고발당한 것으로 전해졌다.ⓒ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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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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