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조선 업황 회복이 여의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임단협 이슈마저 해를 넘겼다. 경영환경 악화에 노조까지, 조선사들로서는 한숨만 쉬는 처지다.
12일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선박 수주량은 전년 대비 약 12% 감소한 950만CGT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자국 물량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급성장과 엔저 기조를 등에 업은 일본 사이에서 고립무원의 극단적 처지로 내몰렸다.
특히 지난해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중심으로 임단협이 난항을 겪으면서 국내 조선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쟁점은 ‘임금인상’ 부분이다. 지난해 신규 수주가 급감하는 등 경영상황이 악화되면서 사측은 일정 수준 이상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노조 측은 이번만은 물러설 수 없다며 배수진을 친 터라 노사 양측간 접점은 찾기 어려워졌다.
◇현대重, 3조원대 적자에 임단협까지..새해 시작부터 '삐그덕'
지난해 3조원대 대규모 손실을 낸
현대중공업(009540)은 지난 7일 진행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압도적인 반대표로 결론, 노사 양측 간 어렵게 만든 잠정합의안이 끝내 부결됐다.
지난해 5월 상견례 이후 7개월 동안 70여차례 교섭을 통해 지난달 31일 극적으로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조합원들의 반발로 합의는 무산됐다. 기본급 인상 부분에서 당초 노조의 요구안과 차이가 컸던 것이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측은 기존 입장에서 한 발 양보해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노조 요구안과는 기본급에서만 8만원 넘게 차이 났다. 이에 따라 노사는 재협상을 진행해야 하지만, 이달 노조의 대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어 본격적인 재협상은 다음달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올해 턴어라운드를 목표로 한 현대중공업의 새해 계획은 정초부터 어긋나게 됐다.
(사진=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삼성重, 총파업 위기 직면..성과급 축소에 반발
지난해 1분기 해양플랜트 손실 등으로 362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삼성중공업(010140) 역시 노사 갈등에 허덕이고 있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는 지난해 5월 사측과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지만 9월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이후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11월까지 노사 교섭을 갖지 못했다. 지난달에서야 교섭을 재개했지만 해를 넘겨 올해까지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협의회는 급기야 지난 9일 서울 서초동 삼성중공업 본관 앞에서 상경집회를 벌였다. 사측의 성과급 축소가 이들을 거제도에서 서울로 상경시킨 주요 원인이었다.
협의회에 따르면 연간 200%씩 받던 PS(초과이익분배금)와 PI(생산성격려금)가 각각 기본급의 79%, 50%로 대폭 줄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연간 수입도 1000만원 이상 줄게 됐다는 게 협의회 주장이다.
반면 사측은 임금지급 방식은 그룹 경영방침에 따라 정해지는 것으로 협의회와 상의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룹 차원에서 사업구조 개편 등 일련의 쇄신이 진행되는 상황인 데다, 지난해 부진했던 실적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협의회는 사측의 성과급 축소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총파업까지 각오한다는 방침이다. 협의회는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크게 줄면서 파업에 대한 열기가 어느 때보다 높아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진행될 경우 압도적으로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강성노조에 무분규 기록 종지부 '위기'
대우조선해양(042660)은 경쟁사에 비해 여유가 있는 편이다. 지난해 8월 하계휴가가 시작되기 전 단체교섭을 최종 타결하면서 24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달성했다.
노사가 합의한 주요 내용은 ▲기본급 1만3000원 인상 ▲직위수당 5000원 인상 ▲성과배분상여금 300% ▲회사 주식매입 지원금 200% ▲교섭타결 격려금 280만원 ▲사내근로복지기금 40억원 출연 ▲60세로 정년연장 ▲협력사 직원 처우 개선 등이다.
아울러 조선 3사 중 유일하게 지난해 수주목표를 달성하는 등 경영 상황도 양호하다.
하지만 지난해 강성 노조가 들어서면서 올해는 무분규 기록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19년간 무파업 기록을 이어왔지만, 강성 노조로 분류되는 현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20년 만에 파업 위기를 맞아야만 했다.
특히 지난해 단체교섭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통상임금과 관련, 현재 진행 중인 소송결과를 바탕으로 추후 재논의하기로 해 불씨는 여전하다.
이와 관련해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12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업계 맏형인 현대중공업의 잠정합의안이 부결되면서 통상임금 논의에 대한 노조의 움직임에 불이 붙었다는 분석이다. 그간 현대중공업의 합의안은 국내 조선업계의 기준이 돼 왔다.
이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은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본격적인 노사 협상에 앞서 꾸준히 해왔던 것”이라며 “실제 파업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혹시 모를 파업에 대비해 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 지난해 단체협상 합의 이전에도 찬반투표를 진행해 가결된 바 있다”고 말했다.
통상임금 관련해서는 “지난해 단체협상 타결 이후 8차례 통상임금에 관한 협상을 진행했지만 뚜렷한 기준이 없어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뉴스토마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