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삼성전자(005930)의 블랙베리 인수설이 또 다시 불거졌다. 지난 2012년 1월 이후 3년 만이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양측이 모두 인수설에 극구 부인하면서 표면상으로는 해프닝으로 끝나는 모양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하며 새로운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인수과정에서의 불발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인수합병(M&A)이나 블록딜은 통상 철저한 비밀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불발됐을 경우 양측 모두 이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이 14일(현지시간) 삼성전자가 특허권 확보 차원에서 최대 75억달러(8조1112억원)를 들여 블랙베리 인수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나스닥 시장에서 블랙베리 주가는 한때 30%까지 치솟으며 시장이 출렁였다. 이후 양측이 인수설을 공식 부인하며 시장은 다시 잠잠해졌다.
◇위기의 블랙베리
지금은 비록 매각설에 오르내리지만 블랙베리도 화려했던 과거가 있었다. 1999년 첫 선을 보인 블랙베리는 휴대폰에 PC의 키보드 자판을 담아 이메일과 메시지 전송기능을 수월케 했다. 기업인들의 필수품이 됐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애용하면서 '오바마폰'으로도 불렸다.
오바마폰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지난 2008~2009년 북미지역 스마트폰 시장에서 블랙베리는 50% 수준을 점유한 절대강자였다. 하지만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 등장에 방심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애플과 삼성에 밀리면서 2013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대까지 떨어졌고, 이 과정에서 매각설과 퇴출설이 끊이질 않았다. 불과 5년 만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
지난해 블랙베리 인수를 추진한 중국 최대 PC제조사 레노버는 회사 인수에 앞서 재무상태 실사작업을 위한 비밀유지조약까지 체결했지만, 캐나다 정부의 반대로 인수가 무산됐다. 블랙베리의 핵심 기술로 평가되는 보안 메시징 기술 등이 미국 정부 기관을 비롯해 많은 기업에 쓰이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기업으로 넘어가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블랙베리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인수설이 끊이질 않는 데는 블랙베리의 자산이 아직까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QNX 운영체제(OS)를 포함해 기업용 서비스 소프트웨어와 수많은 특허, 수억건의 암호화된 메시지를 담당하는 보안 네트워크가 대표적이다다.
이 때문에 레노버를 비롯해 아마존, 페이스북, 퀄컴 등이 블랙베리의 인수설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1위 삼성전자도 새로운 주인으로 거론되는 후보군 중 하나다.
◇삼성전자, 이유있는 블랙베리 인수설
삼성전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블랙베리의 강점은 기업용(B2B) 시장과 밀접한 보안 관련 특허다.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B2C 시장에서는 최강자로 꼽히는 삼성이지만 유독 B2B 시장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기관이나 기업 등이 주로 사용하는 보안 네트워크를 갖춘 블랙베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블랙베리와 손잡고 기업용 모바일 보안 솔루션을 만들기로 하는 등 B2B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40년 넘게 B2C시장을 공략해온 저력을 B2B시장으로 확대해 저가 공세를 펼치는 후발주자들을 따돌리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투자업계 관계자는 "B2B시장은 신흥국들의 진입 장벽이 높아 한 번 안착하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B2B시장에 보안관련 특허에 뛰어난 블랙베리가 삼성전자 입장에서 매력적인 회사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 전자결제 시장이 확대되는 추세로 향후 애플과의 경쟁에 있어 블랙베리의 보안 솔루션이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블랙베리 시장 점유율은 전 세계적으로 1%도 안 되기 때문에 회사 인수로 시장점유율을 올리겠다는 것은 아니다"면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전자결제 시장이 커지면서 보안이나 해킹 문제가 중요해지는데, 블랙베리가 관련 특허도 많이 가지고 있고 능력이 좋기 때문에 이 부분을 삼성전자가 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애플은 이미 보안 문제도 탁월하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블랙베리 인수를 통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부분을 보안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M&A가 그렇듯 관건은 '인풋 대비 아웃풋이 얼마나 될 것인가'다.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인수설에 양사가 부인함에 따라 즉각적인 인수 재시도는 이뤄지지 않겠지만, 블록딜이 무산됐을 경우 양측이 통상 이를 부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수 시도 중 불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