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사각지대, 육성선수)③육성 원한다면 인격부터 보장해야

입력 : 2015-02-03 오전 11:00:00
◇부산 사직야구장 전경. (사진제공=롯데자이언츠)
 
[뉴스토마토 이준혁·임정혁기자] KT위즈의 신고선수 방출 파문 이후 야구 육성선수나 축구 번외지명선수들의 인권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대다수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선수 풀 확대를 위한 이들 선수를 스포츠단 운영의 '객체'가 아니라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스포츠단은 아직 '산업'이라고 여기기 어려울 정도로 자생력이 없고 비인기 종목의 경우 더욱 열악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런 이유로 상호간 계약을 지키지 않고 인권 문제에 둔감한 국내 체육계 현실을 용납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인식 개선과 별개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다. 일부 전문가들은 제도와 규정을 자세하고 빈틈없이 정비해, 터무니 없는 인권침해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선수들끼리의 문화도 중요하다. 동료 의식을 갖고 어려운 선수를 외면하지 말아야 모두가 합당한 대우를 받는 풍토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신고선수(현 육성선수)는 2군 리그인 퓨처스리그 참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퓨처스리그는 대다수 야구 팬들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고 경기장도 다수 야구팬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위치한다. 다음은 서울경찰수련원 야구장(경기도 고양시 내유동)에서 2014년 진행된 경찰야구단과 KT의 퓨처스리그 경기. (사진=이준혁 기자)
 
◇"인식부터 바꾸자"
 
프로스포츠에는 팬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들이 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주목도 받지 못한채로 사라지는 선수들이 다수다.
 
그렇다고 스타로만 리그를 운영할 수는 없다. 프로야구의 육성선수나 축구의 번외지명선수 그리고 배구 수련선수 등이 운영돼야 하는 이유다. 
 
스포츠계에서도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육성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핑계로 이들에 대한 현 수준의 처우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인식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국내 스포츠단들의 경영난이 심각하니까", "억울하면 독하게 마음을 먹고 실력을 키워서 올라오면 되니까", "실력이 부족한 선수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면 타성에 젖어 오히려 노력을 안하게 되니까"라는 식이다.
 
KT위즈에서 방출된 육성선수들을 대변했던 장달영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계약서가 없거나 제도가 미비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며 "육성선수에 대해서는 계약을 철저히 지키지 않아도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게 문제"라며 인식 변화를 주문했다.  
 
과거 프로야구 삼성, 한화, LG의 2군 감독직을 역임한 박용진 전 감독은 "선수를 구단 운용의 소모품이 아니라, 기량을 키워서 함께 나아갈 동반자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3년 8울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르네상스호텔 3층 대회연장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 주최로 열린 2014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 각 구단에 지명된 선수들이 유니폼을 입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News1
 
◇제도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등록선수에게 맞춰진 규정을 세분화해 저기량 선수에게 적합한 규정을 별도로 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스포츠인권심포지움을 개최한 고윤기(법무법인 고우) 서울변호사회 사업이사는 "일반 기업과 달리 근무·계약이 특수성이 있는만큼 각 종목별 협회가 관리하면서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체제도 생각할 만하다"고 말했다.
 
고 이사는 "세계화가 많이 이뤄진 축구의 경우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규정을 따르고 세부적인 일부 부분에서 한국적 특색을 더한 경우라 갈등이 드물지만 다른 종목은 그렇지 않다"며 "일단 계약서의 이행이라도 이뤄져야 하고 또 규정을 꼼꼼하게 만들어 계약 미이행과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산하 야구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 중인 전용배 단국대 교수(스포츠경영학과)는 "<뉴스토마토>의 이번 기사가 국내 체육계에서 억울하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선수들의 인권 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면서 "계약서가 현행법과 사회 미풍양속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데다, 선수의 잘못도 없는데 계약사항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도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이번에 사건이 터진 종목인 야구는 물론 다른 종목도 다르지 않은만큼 제도에 문제는 없는지, 계약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선수 피해는 어떠한지 살펴보고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 11월10일 탄생한 KBL D리그 개막식 모습. (사진=KBL)
 
◇헤비팬(Heavy Fan)들 "선발인원 제한·직업 재교육 고려해야"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거나 스포츠 분야 연구·기록 등을 취미로 삼는 헤비팬(Heavy Fan)들도 <뉴스토마토>의 보도로 파장이 확산되자 사건을 다양한 방법으로 공유하며 팬들의 여론을 이끌었다.
 
야구기록 연구모임 'S.Record'의 대표로 퓨처스리그 경기를 자주 방문한 심재령씨는 "강민호 선수가 경남 양산에 야구장 건설비를 기부한 것처럼 고액 연봉자들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며 "이들이 어려운 동료들을 살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구 팟캐스트 '트리플플레이'를 운영하고 있는 제작자 이재훈씨는 "국내 프로야구의 경우 KBO가 연초 육성선수 수를 집계하지만 '공시'란 공식적인 과정은 하지 않는다"며 "등록선수처럼 육성선수의 계약서도 납득할만한 큰 틀의 내용을 정하고 공시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육성선수가 없는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 선발은 20라운드까지 가기도 한다"며 "육성선수 제도를 없애고 등록선수의 선발을 늘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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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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