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추이.(출처=한국석유공사)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 중반으로 답보상태에 빠진 가운데 정제마진은 지난 2013년 3월 이후 22개월 만에 최고점을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제마진은 수입원유와 석유제품의 가격차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정유사의 수익성을 가늠하는 척도다. 통상 정제마진은 유가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데, 올해 들어 역행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8.42달러로 나타났다. 전주 대비 0.6달러 상승하면서, 지난 2013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복합정제마진은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빠르게 회복되는 모양새다. 올 1월 평균 정제마진은 배럴당 7.2달러로, 전월 6.05달러 대비 19%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분기 평균 6.23달러와 비교해도 16% 올랐다.
복합정제마진의 반등세는 국제유가가 급락세를 타고 있는 시기와 맞물려 눈길을 끈다. 국내 도입 원유의 8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는 지난해 12월 평균가격이 60.23달러로 전월 대비 22% 하락했다. 지난 1월 가격 역시 전월 대비 24% 급락했다. 흐름을 같이 하는 관례를 깬 이례적 현상이다.
정유사 가운데 가장 먼저 실적을 발표한 S-Oil은 지난달 30일 4분기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에서 "1월 말 기준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7.5달러 수준으로 4분기 평균 대비 확대된 상황"이라면서 "동절기가 끝나면 계절적 수요 감소로 인해 다소 축소될 수 있지만, 4분기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정제마진 상승이 국제유가와 석유제품 가격 간 시차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원재료인 유가는 급격하게 떨어지는 데 반해 석유제품 가격은 하락세가 더디게 전개된 영향이 컸다는 설명이다.
국제유가는 최근 중동 산유국들이 미국의 셰일오일·가스 견제에 나서면서 수급상황과 무관하게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반면 석유제품은 전방의 수요와 공장 가동률에 묶인 탓에 유가 흐름을 그대로 쫓아가기 힘든 측면이 존재한다.
박재철 KB투자증권 연구원은 "계절적 석유제품의 수요 확대와 그에 따른 석유제품과 원유간 스프레드(제품과 원료 가격의 차이) 상승에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권영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최근 정제마진이 상승한 것은 낮아진 유가로 인한 수요 진작과 한계 정유사들의 생산량 조절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유가급락 여파로 정유사업 부문에서 지난해 막대한 손실을 떠안은 정유사들 사이에서는 이견이 엇갈리고 있다.
S-Oil 관계자는 "중동의 신규 설비가 가동돼 공급 증가가 부담이 되지만, 현재 아시아지역 내 난방유 소비가 늘고 있기 때문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수요회복 여부를 아직 예단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정제마진 상승이 무엇보다 유가급락의 영향이 큰 만큼 가격 흐름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정제마진 상승세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지가 중요하다"면서 "유가하락이 진정되고, 정제마진 추이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봐야 수요 회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