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쇄신 1주년 맞아 '靜中動'

입력 : 2009-04-21 오후 6:56:00
이건희 전 회장이 퇴진한 경영쇄신 1주년을 맞아 삼성그룹이 보이고 있는 '정중동'(靜中動)의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은 이 전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 전략기획실해체, 이 전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최고고객책임자(CCO)직 사임 등 경영쇄신 계획을 발표한 지 22일로 1주년을 맞으나 대외적으로 이와 관련한 공식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경영쇄신 시행에 따른 성과를 평가하거나 향후 추가 계획을 발표하지 않고 있으며 1주년을 기한 논평도 임직원들의 비공식 언급 외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전 회장 역시 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삼성과 관련된 행사에는 물론 여타 공적인 행사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재용 전무는 CCO직을 사임하고 당초 약속한 대로 중국, 베트남 등 신흥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해외 출장을 자주 나가고 있으나 언론과 접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겉모습과 달리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새로운 상황에 대비하고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그룹 경영의 고삐를 죄기 위해 내부적으로는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무엇보다 삼성의 가장 큰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이 전무의 편법적인 삼성 지배권 확보 논란의 원인이 된 에버랜드 CB 발행사건은 대법원이 이달 28일 유.무죄에 관해 전원합의체 합의를 시도한다.

대법원은 에버랜드 전직 경영진인 `허태학.박노빈 전 사장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안에 대해 지난 3일 유.무죄를 판단하는 전원합의체 합의를 시도했으나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선고일을 정하지 못하고 다시 합의를 열기로 했었다.

워낙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두번째 논의에서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으나 빠르면 이달안에 에버랜드 CB 발행 사건의 유.무죄 여부가 사실상 확정될 가능성이 없지 않은 셈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재판' 역시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 재판의 쟁점 중 에버랜드 CB 발행은 '허태학.박노빈 사건'과 중복되기 때문에 사실상 전원합의체의 합의에 따라 역시 유무죄가 갈리게 된다.

이때문에 삼성은 에버랜드 CB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선고방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은 에버랜드 CB 발행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으면 지난 10년 가까이 그룹을 '원죄'처럼 따라다녔던 이 전무의 편법 지배권 확보 논란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와함께 삼성은 전략기획실 해체, 계열사 독립 경영, 대대적인 조직 개편 및 인적 물갈이 등 새로운 경영 실험을 단행한 후 전례없는 세계 금융 위기를 맞아 매출 및 수익 급감이라는 시련을 극복하고 새로운 경영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삼성은 주력사인 삼성전자를 필두로 비즈니스 캐주얼제, 자율출퇴근제, 순환휴가제 등 사내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할 수 있는 제도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전자 부문에서는 사업부문 간 시너지를 창출하고 시장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차원에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삼성디지털이미징 등의 신설 법인을 출범시키고 삼성LED 설립을 앞두고 있다.

이런 발빠른 대응은 지난해 4분기 1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던 삼성전자가 1분기에 실적 호전이 기대되면서 예상 외의 빠른 속도로 성과를 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평가를 낳고 있기도 하다.

삼성은 21일 사내 인트라넷인 ‘싱글’ 초기화면에 ‘오늘의 사자성어’로 ‘해현경장(解弦更張)’을 선정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다시 팽팽하게 맨다는 뜻이다. 안팎의 도전을 맞아 심기일전을 다짐하는 내부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삼성은 경영쇄신 1주년을 지나 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선고가 내려지고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의 실적이 안정적인 호조세를 보이면 지금보다 훨씬 활발한 경영 행보를 보일 것으로 재계는 예상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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