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은 미래산업이다!)약가인하가 드리운 '그림자'

(창간기획)②정부, 10년간 강공책..산업은 '제자리 걸음'
"산업육성 위한 발상의 전환 절실"

입력 : 2015-02-16 오후 4:42:49
[뉴스토마토 문애경기자] 요즘 국내 제약산업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위기'다. 제약업계 종사자 둘셋만 모이면 제약시장 위축 이야기에 한숨짓는다. "영업이익이 반토막이 났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제약산업이 위기를 맞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업계는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을 꼽는다.
 
◇정부, 잇다른 약가인하 강공 
 
정부가 약가인하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노인인구 증가로 인한 의료비 상승, 복지혜택 확대로 인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의 영향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자, 정부는 의약품 가격 손질에 나섰다.
 
당시 국내 제약업계는 국산신약이 10개 정도 밖에 없을 정도로 제네릭의약품(복제약)에 치중해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제네릭 가격이 외국에 비해 높다고 판단한 정부가건보 재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의약품 가격 깎기에 들어간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료비 중 약품비 비중을 대만과 비슷한 수준인 25%대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약가인하 정책을 추진해왔다.
 
2006년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시작으로 2010년 시장형 실거래가제에 이어 2012년 4월에는 일괄약가인하로 건강보험 등재 의약품 7500품목의 약가가 평균 14% 인하됐다.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약값 대비 효과가 좋은 의약품만 선별해 보험을 적용하는 '선별등재제도'를 도입하고, 이미 등재돼 있는 의약품에 대해서는 약효군별로 경제성 평가를 실시해 비용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는 의약품은 등재목록을 정비하고 가격을 조정하는 '기등재 의약품 목록정비' 등이 골자다.
 
또 보험 적용 1년 후 예상 사용량보다 실제 판매량이 30% 증가된 의약품의 가격을 깎는 '사용량 연동 약가제' 역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이 제도는 지난해 1월부터 보험 청구실적이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하고, 절대금액이 50억원 이상 증가한 제품으로 강화됐다.
 
2010년 시행된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병원 등이 의약품을 싸게 구입하면 보험 등재가와 구입 금액 간 차이의 70%를 돌려주는 제도다.
 
◇약품비 비중 26%로 감소..정부 "당분간 새 약가인하는 없다"
 
이런 약가인하 정책으로 전체 의료비에서 약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당연히 크게 감소했다. 2007년 총 진료비 대비 29.43%였던 약품비 비중은 2008년 29.64%, 2010년 29.25%, 2012년 27.11%, 2013년 26.10%로 줄었다.
 
건강보험재정 절감효과도 톡톡히 거뒀다. 그동안 기등재 의약품 품목정비 사업으로 약 7600억원의 약품비가 절감됐다. 정부는 2012년 일괄약가인하 후 만 1년만인 2013년 3월 말까지 약 1조7000억원의 약품비가 절감됐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연도별 총진료비 중 약품비 현황(자료=복지부)
 
정부는 국내 의약품 가격의 거품이 상당 부분 빠졌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약가인하 정책으로 의료비 대비 약제비 비중이 26%으로 줄어든 만큼 현 수준을 유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선영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약품비 비중이 많이 줄었다"며 "고령화 등으로 약품비 총량 자체는 늘 수 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약품비의 급격한 증가를 막고 현 수준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의약품 가격이 의료비 증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고가 의약품을 위주로 약가를 관리하는 것은 지속해 나가되, 새로운 약가인하 제도를 도입하거나 추가적인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산업 위축', 신약개발 의지 저하로 이어져
 
하지만 약가인하 정책으로 국내 제약산업은 크게 위축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 제약시장은 약 19조원 규모로 세계 시장의 1.9%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2010년 이후 외형적으론 사실상 정체 수준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한국 제약시장은 2006년 11.4조원에서 2010년 18.9조원으로 약 65% 성장한 이후 4년째 19조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여재천 신약연구개발조합 전무는 "고령화 등 제약시장이 성장할 다양한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체돼 있다는 것은 사실상 산업자체가 크게 축소됐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인사도 "노인인구 증가, 복지 확대 등을 고려할 때 제약시장은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며 "하지만 시장이 정체돼 있고, 이는 미래 전망도 어렵게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이 결국 제약업계의 신약개발 의지를 저하해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 전무는 "우리나라의 약가인하 제도, 특히 사용량 연동 약가제는 약을 많이 팔수록 약가를 깎는 제도로 신약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하나의 발명품을 개발하려면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런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매출이 나올지를 않는데, 어떤 제약사가 R&D에 투자를 하겠냐"고 반문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도 "회사가 어려워지면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분야에 투자를 줄이는 것이 당연하다"며 "약가인하 정책은 제약업계의 신약개발 의지를 꺾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약개발 의지 저해는 나아가 의약품 주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의약품 건강주권은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신약 연구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나중에 전염병이 유행하더라도 훨씬 많은 비용을 들이고도 제때 치료제를 공급받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계속)
 
◇왼쪽부터 복지부, 제약협회.(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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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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