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자우림의 노랫말처럼 “별다른 욕심도 없이, 남다른 포부도 없이” 미국 대학에서 한 학기를 보내게 된 필자는 미국 땅에 발을 내딛은 첫 날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도착한 미국은 생각만큼 상냥한 곳이 아니었고, 지저분한 호텔에서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첫 날 밤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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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동이 틀 무렵에 간신히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체크아웃 시간이 임박해서야 겨우 눈을 떴다. 샤워를 한 후 축축한 발에 농구화를 신고 걸어 나오면서 일단 방에 샤워 시설이 딸린 다른 모텔로 거처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날 입은 옷가지들을 가방에 대강 쑤셔 넣고 YMCA 호텔을 나섰다. 바닥이 젖지 않을 정도의 약한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한국의 겨울 날씨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꽤 쌀쌀했다. 온몸이 찌뿌드드한 아침이었다.
옮긴 숙소는 화장실과 욕실이 방에 딸려 있었고, YMCA 호텔에 비해 훨씬 깔끔했다. TV에서 미국 채널이 나오고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다는 점을 빼고는 한국의 모텔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금요일이라 숙박비가 더 비싸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이 나라의 모텔은 요일별로 다른 가격을 책정하지는 않는 듯했다. 넉넉한 사이즈의 침대에 널브러져 한숨 푹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내일부턴 3일 간의 연휴가 시작되고 바로 그 다음날 학기가 시작되니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했다.
◇사진=바람아시아
이리저리 수소문한 결과, 이곳 대학생들의 주거 양상은 크게 기숙사, 아파트(자취), 사설 기숙사 정도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집세는 물가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었고, 이에 따라 많은 대학생들이 룸메이트를 구해 아파트 한 채를 두 명 이상이 나눠 쓰고 있었다. 또한, 이곳의 주거 시설 역시 한국 대학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캠퍼스로의 접근성이 집세 책정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곳의 자취방은 한국 대학가의 원룸에 비해 훨씬 넓었다. 모든 살림살이를 우겨넣은 작은 방 하나 정도로 느껴지는 한국 원룸에 비해, 이곳의 스튜디오는 자그마한 아파트 한 채에 가까웠다. 개중 학교까지 걸어 다닐 만하다 싶은 거리에 있는 스튜디오는, 한 달에 족히 1500 달러는 줘야한단다.
방 하나에 주방 겸 거실이 딸린 아파트의 월세는 2000~2500 달러 선이었고, 방이 두 개인 아파트의 경우는 대부분 3000 달러 이상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던 월세 40만원의 안암동 원룸이 불현듯 그리워졌다. 미국 영화에서 종종 보곤 했던 ‘돈 없는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이 살 법한, 낡았지만 분위기 있는 아파트’는 실은 그리 저렴하지 않았던 것이다.
◇돈 없는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이 살 법한, 낡았지만 분위기 있는 아파트(캡쳐=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이 동네에서 혼자 자취하다가는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이면 돈이 다 떨어져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면 대안은 룸메이트를 구하는 집, 즉 셰어링 홈(sharing-home)을 찾는 것. 그러나 개강이 임박해서인지 괜찮은 조건으로 나온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몇 군데를 둘러보았으나, 집세가 여전히 너무 비싸거나, 환경이 지나치게 열악하거나, 학교에서 너무 멀었다.
다른 조건은 나쁘지 않았으나 여학생과 한 방에 살아야 하는 곳도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여학생은 전혀 개의치 않는 기색이었으나,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백면서생으로서는 선뜻 그러겠노라 하기가 망설여졌다. 남녀는 본디 유별하여 모름지기 남녀(男女)가 칠세(七歲)에 이르면 부동석(不同席)하는 것이 동방의 예(禮)일진대, 낯모르는 이국의 여인과 한 방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UC 버클리에서는 나와 같은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기숙사(i-House)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이곳은 입주비용이 3인실 기준으로 학기당 7000 달러에 달했다. 식사가 제공된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비쌌고, 그나마도 지난해 12월에 이미 정원이 다 찬 상황이었다.
또한, 학교 주변에는 기숙사와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는 민간 주거시설이 몇 군데 있었다. 이러한 시설은 대개 큰 건물 하나에 대개 2~4인실인 방 수십 동을 만들어 입주자를 받는 형태였고, 독서실과 라운지, 공용 주방 등의 편의시설도 구비해놓고 있었다. 이러한 시설의 입주비용은 대략 한 달에 1000~1200 달러 수준이었다. 역시나 내 예산에 비해 너무 비쌌다.
◇사진=바람아시아
많은 시행착오 끝에 개강 이틀째 되는 날에야 거처를 구했다. 내가 살게 된 곳은 캠퍼스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3층짜리 목조 주택이다. 아주 넓은 방 한 칸을 세 명이서 쓰는 조건으로, 비교적 납득할 만한 가격에 방을 구한 셈이다. 짐을 대강 풀어 두고 ‘내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캐리어를 끌고 모텔을 전전하던 지난 일주일이 아득했다. 매일같이 캐리어를 끌고 다니던 생활은 오늘로 끝이다. 나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저녁 끼니도 거른 채.
<교환학생 Tip>
하다못해 배낭여행을 하더라도 가장 큰 문제는 숙박일진대,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거처를 구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출국 전에 거처를 정해 두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살 곳을 직접 보고 결정할 수 없기에 선뜻 결정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학교에서 기숙사를 제공하며 기숙사의 조건이 납득할 만한 수준이라면 기숙사에 머무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한 방법이다.
기숙사에서 살게 되면 식사가 제공되므로 끼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과 쉽게 교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 여유를 두고 출국하여 현지에서 차근차근 머무를 곳을 알아보자. 출국 전에 거처 몇 곳을 점찍어 두는 것은 좋지만, 불안한 마음에 섣불리 계약까지 해버리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사진으로 보는 숙소의 모습은 실제와 다소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할뿐더러, 교환학생의 불안한 심리를 노린 사기 사례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