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만 빠져나갔다..일감몰아주기는 아직 사정권

입력 : 2015-02-23 오전 8:26:03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한 재계의 몸부림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14일 관련 법률 시행에 앞서 기업들이 합병이나 사업구조 개편, 총수 일가의 지분 축소 등 서둘러 대책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기업들이 법상 규제의 사정권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7월에 개정, 2014년 2월 시행하려다 1년간 유예됐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핵심은 '재벌 총수의 사익편취 금지'다.
 
그동안 재벌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만 있었다면 개정안은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금지하는 방안이 추가됐다. 과징금과는 별개로 총수 일가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형과 최대 2억원의 벌금형을 함께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규제의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 이상(비상장사는 20%)인 회사가 다른 계열사와 연간 200억원 이상, 매출의 12% 이상을 거래해야만 규제 대상이 된다.
 
기업들은 총수 지분율을 낮추거나 일감몰아주기를 줄이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지만, 태생적으로 계열사 일감 처리를 위해 만든 기업들에게 이는 쉽지 않다. 지난 1년의 유예기간 동안 다수의 기업이 일감보다 총수 지분율에 포인트를 두고 움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차그룹은 한 차례 실패에도 아랑곳없이 총수 일가의 지분을 축소했다. 지난 5일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을 통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대거 팔아치웠다. 정 회장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43.39%에서 29.99%로 낮아졌다. 총수 처벌기준인 30%를 단 0.01%포인트 차로 피했다.
 
현대차그룹 설명도 "공정거래법 개정에 따른 지분 축소"라며 지주사 체제 전환 등 경영권 승계 해석에 대한 방어에 초점이 맞춰졌다. 규제의 목적은 대기업 계열사들의 일감몰아주기를 줄인다는 것이지만, 시장의 대응은 일감을 줄이기보다는 어떻게든 규제를 피해보자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 현대글로비스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만 줄었을 뿐 내부거래는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 지난달 말 발표된 현대글로비스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매출액 증가의 요인이 현대·기아차 등과의 내부거래에 집중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 알라바마 공장, 체코 공장, 터키 공장, 러시아 공장, 브라질 공장, 사천 공장과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 조지아 공장에 대해 CKD부품 공급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글로비스의 CKD부문 실적은 4조9000억원에서 5조820억원으로 늘었다. 매출감소 요인으로 국내물류 상생경영의 영향을 꼽을 정도로 모그룹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정 회장 일가와 같이 총수 지분에 직접 손을 대기 어려운 경우 합병이나 사업의 이합집산을 통해 규제를 피하기도 했다. 총수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기업의 분할이나 구조 개편이 반강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삼성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제일모직의 경우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사장 등 총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42.19%에 달한다. 지배구조상 지분을 팔기가 어렵다보니 다른 방법을 택했다.
 
제일모직이 2013년부터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식자재 사업부를 웰스토리로 분사시키고, 빌딩사업부를 에스원에 양도한 것은 이들 지분을 유지하면서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겠다는 방향성의 결과다.
 
삼성SDS와 삼성SNS의 합병도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가치를 지키면서 외형적으로 지분율만 낮추는 방식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SNS 지분율은 45.7%로 높았지만 삼성SDS와 합병하면서 희석됐다. 대신 삼성SDS 지분은 8.8%에서 11.25%로 올랐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SK그룹과 SK C&C의 합병설 역시 마찬가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SK C&C는 지주사 SK를 지배하는 옥상옥으로, 최태원 회장이 최대주주다.
 
최태원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43.6%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SK C&C는 내부거래의 매출 비중이 40%를 넘는다. 당연히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지만 SK그룹과 합병할 경우 최 회장 등 특수관계자 지분은 30% 수준까지 떨어진다. 이미 다른 사안으로 구속수감 중인 최 회장이 일감몰아주기로 또 다시 법정에 서게 되는 일도 막을 수 있다.
 
지분이나 내부거래 비중의 변화로 총수의 형사처벌을 피할 수는 있지만, 기업들이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원천적으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설된 공정거래법 23조의2 외에 기존 23조에서 불공정한 내부거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과징금 처벌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공정위의 2013년말 기준 대기업집단 내부거래현황 자료를 보면 대기업집단의 총매출액 기준 내부거래 비중은 12.46%, 내부거래금액은 181조5000억원에 이른다. 47개 대기업 집단, 1351개 기업이 용의선상에 있다.
 
물론 공정거래법에서 긴급성과 보안성 등의 요건을 갖춘 내부거래는 규제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지만 공정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공정위 관계자는 "총수 일가에 대한 처벌규정을 담은 공정거래법은 지난 14일부터 곧바로 적용됐다. 기본적으로 부당 내부거래 발생 가능성이 큰 분야를 중심으로 정밀하게 감시해서 규정을 적용하게 될 것"이라며 "지분율 규제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부당 내부거래로 판단되면 과징금을 물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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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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